연도별 문화인물

왕산악 (王山岳)
?~? / 고구려 말기의 거문고 대가
  • 오늘날의 음악개념과는 달리 도(道)의 하나로서 군자적인 도량과 예인(藝人)적인 낭만과 고래(古來)의 선가사상(仙家思想)과 연결되는 거문고 음악의 이해를 위해 문화체육부는 가야금과 함께 한국전통음악에서 쌍벽을 이루는 현악기인 거문고를 제작한 고구려시대의 인물 왕산악(王山岳)을 9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고구려시대 거문고의 제작자이며 관리 왕산악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짧은 내용이 그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전부이다. 거문고의 제작에 관해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진(晉)나라 사람이 일곱 줄의 현악기를 고구려에 보내왔는데, 고구려사람들은 그것이 악기인줄은 알았지만 그 악기의 성음이나 연주법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음률을 알고 연주법을 아는 사람을 거국적으로 구해서 후상(厚賞)하기로 했다. 그때 제2재상으로 있던 왕산악이 칠현금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크게 그 법제를 고쳐서 악기를 만들었다. 아울러 백여 곡의 음악을 지어 연주하니 마침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했고 후에는 단지 현금이라고 했다.


     그가 언제 거문고를 만들었는지 삼국사기에 언급되지 않아 불확실하다.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진나라가 서진(西晉,265 - 316)이냐 아니면 동진 (東晉, 316 - 419)이냐에 대해 여러 이론이 분분하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며 수십 세기를 내려오며 민족의 정서를 북돋아온 악기 중에서 우리의 고유한 음악정신에 한발 가까이 밀착해온 악기를 꼽으라면 거문고가 그 첫손에 꼽힌다. 둔탁한 듯하면서도 소박하며 조잡한 듯하면서도 오묘한 음색의 매력을 갖고 있으며 거문고가 울려주는 현실음을 뛰어 넘은 뒤안길엔 거문고의 정신, 우리의 음악정신이 담겨져 있다. 느릿하게 연주해가는 속에서 휴지(休止)의 세계, 여백의 세계가 느껴진다. 그러기에 이를 만든 왕산악은 단순한 악공(樂工)이 아니라 선도(仙道) 또는 도가(道家)사상에 정통한 풍류가 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