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해풍 심훈 (海風 沈熏)
1901~1936 / 소설가, 영화인
  • 문화체육부는 농촌계몽소설『상록수』를 쓴 일제식민지 시대의 소설가, <그날이 오면>이라는 항일 저항시를 쓴 시인이며, 영화인이었고, 언론인이기도한 심훈(沈熏)선생을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3.1운동에 가담하면서 민족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선생은 자신의 문학이 한창 개화되기 시작한 36세 때 그의 영원한 대표작인 된 <상록수>의 출판관계로 상경했다가 불의의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생애 및 업적
  •  심훈의 문학적 활동은 3.1운동에서 시작된다. 당시 경성제일고보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었고, 이때 옥중에서 비밀리 부쳐진 편지 <어머니께 드리는 글월>에 그의 문학적 재질이 담겨있다. 출옥 후 중국으로 유학의 길을 택한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가고자 했으나 배일(排日) 사상에 충만된 집안의 반대로 좌절되고 말았다. 만주 지강(之江)대학에서 수학하게 되고 훗날 발표된 <동방의 애인>이라든지 <불사조>등은 당시의 생활을 소재로 한 것이다. 1923년 귀국 후 "염군사" 연극부에 가담하기도 하고 신극 연극단체인 "극문회"를 조직하였다. 카프(KARF)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그 이듬해에는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1925년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의 후반부를 대역하면서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에 영화에 몰두하게 되었다.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소설인 <탈춤>을 연재하였고,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하여 단성사에서 개봉 하는 등 영화에 대한 열정을 나타냈다. 1932년 고향 충남 당진으로의 낙향과 더불어 소설 집필에 전념한 결과 <영원의 미소>(1933),<직녀성>(1934), 그리고 <상록수>(1935)등 세 장편을 내놓았다. 특히 이 기간 동안 그는 실제 농촌에 살면서 농민의 삶을 접하고 또한 당시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공동경작회' 회원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농민소설로 손꼽히는 <영원의 미소>와 <상록수> 를 썼다.


     심훈이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상록수>에서이다. 1935년 <동아일보> 장편 현상 모집 당선작인『상록수』는, 브나로드 운동의 시범작으로 발표된 이광수의 <흙>의 시혜(施惠)적 태도를 뛰어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제작이다. 당시의 현실이 칠흑 같은 암흑세계로 뒤덮이고 현실적인 출구가 봉쇄된 상황을 비관하여 통속소설이 만연하는 풍조 속에서 이런 주류에 편승할 수도 있었지만 심훈은 결코 저속한 통속소설로만 낙착되지 않는 경건한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의 작품화를 기도했다.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