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열운 장지영 (洌雲 張志 暎)
1887~1976 / 한글학자
  • 문화체육부는 나라사랑을 위해 삶을 바친 국어학자 장지영(張志 暎, 1887~1976)을 금년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일제하에서 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국산품애용의 열풍을 일으켰고, 3 1 만세운동 시 포고문을 살포하여 전국적으로 확대하는데 이 바지하였으며, 또한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의 창설과 문맹 퇴치운동과정에서 「조선어철자법강좌」를 출간하는 등 독립운동과 교육 문화활동에 평생 헌신하였다.
생애 및 업적
  •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열운(洌雲)이며, 서울출신으로 1906년 한성외국어학교 한어과, 1911년 사립정리사(精理舍, 數理專門)를 졸업 하고 교육계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1908년부터 1911년 사이 주시경(周時經)의 문하에서 국어학을 연 구, 나라 사랑의 정신과 학문의 기초를 다졌으며, 1911년에는 사립정리사(精 理舍, 數理專門)를 졸업한 뒤 교육계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1912년 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무명을 손수 짜서 옷을 지어 입는 등 국산품 애용 운동을 벌였으며, 1913년에는 청년비밀결사대인 「흰얼모(白英社)」를 조직하여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통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19년에는 고종황제의 승하내막을 폭로하여 국민의 의분을 불러일으키기로 하고 조규수가 지은 국민대회 포고문을 시내 곳곳에 붙여 3 1운동을 전 국적으로 확대하는데 이바지 하였다. 1920년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모셔가서 왕정을 세우려는 계획을 온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기도 하였으며, 1921년에는 휘문의숙(徽文義熟)에서 임경재(任暻宰), 최두선(崔斗善)등과 국어 국문을 체계 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였다. 1926년부터 1931년 사이 조선일보에 근무하면서 문맹퇴치와 한글보급운동 을 맹렬히 펼쳐 큰 성과를 올렸고, 1927년에는 신석우(申錫雨), 조병옥(趙炳 玉), 안재홍(安在鴻)등과 신간회(新幹會)를 조직하고 동시에 조선일보 신간회 란을 만들어 각 지방의 활동상황을 소상히 알렸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한글동지 30여명과 함께 홍원과 함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광복 후에는 조선어학회 이사장(1946~1949)을 지낸 뒤 연희대학, 제주대학교, 이화여자대학 등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1962년 광복절에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고 1977년에는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어전(1924)」, 「조선어철자법강좌(1930)」, 「국어입문(1946)」, 「옛글(1946)」, 「이두사전 1976」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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