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정태진(丁泰鎭)
1903~1952 / 한글학자
  • 문화관광부는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다 순직한 한글학자 석인 정태진(丁泰鎭)선생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1903년 경기도 파주에서 아버지 정규원과 어머니 죽산 박씨 사이에서 3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지속적인 우리말 연구와 한글사랑으로 민족정신을 지킨 독립 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이다. 연희전문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25년 함남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 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교육 보급을 위해 틈틈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우리문학의 우수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한 선생은 1927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5년 동안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다음 1931년 영생여고에 복직 하여 우리말을 일반 언어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한편, 우리말 방언과 고어에 대하여도 깊이 연구하였다. 1941년 영생여고를 떠나 서울에 올라온 선생은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원으로 자원 봉사하다가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의 중심인물로 구금되어 함흥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때 일본 경찰은 그간 써 왔던 사전원고를 압수한 후 조선어학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8.15 광복 후 선생은 조선 말 <큰사전> 편찬을 다시 시작하는 한편, 연희대·중앙대 등에서 국어학 강의를 맡았으며, 1949년 한글학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조선말 <큰사전> 3권이 간행되었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나 사전편찬이 잠시 중단되었으나 1952년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으로 조선말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한 '유제한'과 합숙하면서 4권에서 6권까지의 원고작업을 끝낸 선생은 1952년 11월 고향인 파주에 다녀 오던 중 교통사고로 동 사전의 완간을 보지 못한 채 49세의 나이로 순직하였다. 한평생 우리말 보존을 위해 몸 바쳐온 선생은 <조선고어방언사전>과 <한자 안 쓰기 문제> 등 저서 8권과 10여 편의 논문을 남겨 한글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을 인정하여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였다.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