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 / 조선 후기의 대선사
  • 문화체육관광부는 조선후기의 선승(禪僧)으로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중흥 발전시킨 초의(1786~1866)를 금년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초의는 저서 「동다송(東茶頌)」에서 그의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과 차를 만드는 법, 감별하는 법, 끓이는 법, 마시는 법 등 다례(茶禮)에 관한 내용을 실었으며 우리나라 차가 맛과 향, 약효에 있어 중국 차보다 우수함을 주장하였다.
생애 및 업적
  •  초의선사(草衣禪師)는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으며, 법명(法名)이 초의 (草衣)이고 자(字)는 중부(中孚), 속명(俗名)은 장의순(張意恂)이다. 초의는 15세 때 나주 운흥사(雲興寺)에 출가하여 해남 대둔사(大芚寺 : 대흥사(大興寺))에서 본격적인 승려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는 대선사(大禪師) 로서, 그리고 당대의 대표적인 문인(文人)으로서의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는 다인(茶人)이었다. 22세 때부터 전국의 고승(高僧)을 찾아다니며 익힌 교학은 삼장(三藏 : 經·律·論)을 통달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대표적인 선승이었던 연담(蓮潭) 스님으로부터 선지(禪旨)를 이어 받음으로써 교(敎) 와 선(禪)을 겸비하게 되었다.


     저서「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는 당시의 고승인 백파(白坡) 스님의 선사상을 비판한 것으로 초의의 선사상이 집약되어 있으며, 아울러 40여 년간을 오르지 일지암(一枝庵)에서 일생을 수행하였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철저한 그의 수행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또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의 저술을 통해 사라져가던 한국의 차 문화를 중흥 발전시킨 점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 될 것이며, 「동다송」은 다경(茶經)으로 칭해질 정도로 한국다도를 대표하는 저술로 평가된다. 한편, 시서화(詩書畵)와 장 담그는 법, 심지어는 화초재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많은 업적을 일구어 놓았는데 이 같은 면모는 당시 실사구시(實事求是) 표방하던 실학자 등 각계의 지식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얻어진 것이었다. 특히 같은 나이의 김정희와 사제관계인 정약용과의 각별했던 교유는 당시 문화사와 유불(儒佛)교섭사 차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밖에 저술로는「초의선과(草衣禪課)」·「 일지암시고(一枝庵詩藁)」등이 있으며, 두 점의 "관음도"를 비롯한 다수의 서화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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