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성호 이익 (星湖 李瀷)
1629~1690 / 조선후기 실학자
  • 문화관광부는 조선후기 실학을 학문적으로 중흥시키고 민생안정을 위해 사회개혁을 주창한 성호『이익』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이익(李瀷)은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아버지 이하진(李夏鎭)과 어머니 권씨(權氏)사이에서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하진(李夏鎭)이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때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파직되고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별세하자 중형 이잠(李潛)에게 글을 배우고 25세 되던 1705년에 중광시에 응하였으나 시소(試所)에서 녹명(錄名)이 격식에 맞지 않았던 탓으로 회시에 응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둘째형 이잠(李潛)이 1706년(숙종32)에 당쟁(黨爭)에 휘말려 희생되자 이익은 이를 계기로 과거에 응할 뜻을 버리고 현재 안산시(安山市) 인첨성리에 칩거하여 유교경전, 정주서를 비롯 이황(李滉), 이이(李珥), 유형원(柳馨遠) 등의 저술을 탐독,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몰두하였다.


     그의 학문사상은 일반 유학자들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사변적(思辨的) 학풍에 빠지지 않고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 등 실학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학문연구에 있어서 자주적, 실증적, 비판적 태도로 접근해야할 것과 현실과 생활에 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정치, 사회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실학의 주요 학문적 업적은 한담(閑談)과 공론(空論)을 일삼고 있는 무위도식하는 양반들도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사농합일론(士農合一論)』과 유능한 인재는 추천에 의해서도 관직에 등용해야 한다는『천거제도(薦擧制度)』의 실시 그리고 소농민을 보호하자는『한전법(限田法)』을 주장하였으며 그 외 유학, 농업, 천문, 지리, 역사, 군사, 경제, 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하였고 서학(西學)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학풍은 그 후 경학(經學)에 이병휴(李秉休), 역사학에 안정복, 지리학에 이중환, 윤동규 등으로 이어졌고 서학에 관한 지식은 신후담, 이가환, 권철신, 권일신에게 이어졌음 또한 남인계 후손을 중심으로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인 성호학파를 형성케 하는 등 우리나라 사상사(思想史)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선생의 주요저서로는 천문, 지리, 역사 등을 망라하여 백과전서적으로 저술한『성호사설』, 실학사상의 구체적 내용을 보여주는 『곽우록』을 비롯하여『사칠유편』,『예설유편』,『관물편』,『백언해』등 다수가 있으며 그의 학문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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