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무량 이상화 (無量 李相和)
1901~1943 / 저항시인
  • 문화체육부는 일제치하 민족저항시인(民族抵抗詩人)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상화(李相和) 선생을 금년도 3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그의 대표작 〈나의 침실로〉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오늘날에도 커다란 감동으로 읽혀지고 있으며 민족정신을 잘 가다듬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민족주의 시를 써서 1920년대 우리의 근대 시단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그는 민족시인으로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생애 및 업적
  •  일제치하 민족저항시인(詩人)이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상화(尙火)· 상화(想華)·무량(無量)·백아(白啞)·백아(白亞)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서문로 12번지에서 아버지 이시우(李時雨)와 어머니 김신자(金愼子, 金海金氏) 사이의 4형제(相定·相和·相佰·相旿)가운데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당시 3천 여석지기 지주(地主)이자 대구의 명망가(名望家)인 백부 이일우(李一雨)의 엄격한 훈도 하에 사숙(私塾)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5세 때 경성중앙학교(京城中央學校, 지금의 中東學校) 입학하여 3년 수료하였으며,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백기만 등과 함께 학생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동지들은 모두 검속되고 그만 검거망을 피해서 혼자서 각 군부(郡部)까지 돌아다니며 선언문을 살포하고 운동자금을 조달하다가 서울로 탈출하였다.


     일제의 유화정책으로 고향대구로 다시 내려간 그는 1919. 12월 공주의 명문가 출신인 서온순(徐溫淳)과 결혼하였으며, 남편 사망 후에도 부인 서온순은 어린자녀들을 묵묵히 길러 모두 일가를 이루게 한 후 1980년대에 사망하였다. 이상화는 1921년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동인이 되어 《백조》1~3호 까지 〈말세의 희탄〉·〈단조〉· 〈가을의 풍경〉·〈나의 침실로〉·〈이중의 사망〉·〈TO〉등 많은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였으며 그의 대표작 의 하나인 〈나의 침실로〉는 발표와 동시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오늘날도 각종 교과서에 수록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프랑스 유학을 계획하고 동경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불어와 불문학을 약 2년간 공부 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려 죽음의 위기를 겪은 후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1924년 일본서 귀국 후 그는 서울에서 문단활동에 전념하여 많은 시작품과 평론, 번역 소설 등을 발표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는 일제치하에 처참한 민족적 현실을 직설적으로 고발하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까지 보여주겠다고 다짐할 뿐만 아니라 일제와 그를 추종하는 많은 친일파들을 맹렬히 공격하고 비판하였으며, 당시 유행하던 경향파(傾向派)문학에도 잠시 관심을 갖고 시작품과 평문을 발표하였으나 민족주의 노선으로 다시 돌아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달밤-도회〉·〈비갠 아침〉등과 같은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927년경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 온 그는 일본관헌들의 감시와 가택수색, 작품원고 일체를 빼앗기는 수난을 겪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담교장(談交莊)으로 불리는 그의 사랑방은 독립투사, 사회운동가, 무정부주의자 등이 모여 일본의 침략전쟁을 성토하였다. 의열단 사건에 연루 피검된 후 풀려난 그는 가산이 기울어 생계를 꾸리기 위해 조선일보 경북총국을 경영하였으나 이재(理財)에 너무 어두워 실패했으며 1937년 독립운동가인 백씨 이상정 장군의 투옥소식에 구명 운동차 중국에 다녀 온 그는 스파이 혐의로 일경의 가혹한 고문과 옥고를 겪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교남학교(지금의 대륜중학교)에서 교사로 취임하여 4년간 무보수로 영어와 작문을 가르쳤으며 나라를 빼앗긴 약소민족은 주먹이라도 세어야 한다고 하면서 학교 운동경기 종목에 권투를 넣어 오늘 날 대구 권투 클럽의 모체가 되었다. 교남학교를 사임하고 다시 문단으로 돌아가려한 이상화는 1943년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으며 병증(病症)이 너무 깊어 그해 4월 25일 숨을 거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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