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화서 이항로 (華西 李恒老)
1792~1868 / 조선 후기의 학자
생애 및 업적
  • 이항로(李恒老) : 1792~1868 조선말기 성리학자로 위정척사론자이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의 큰 선비.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어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였으며 이어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승진,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경복궁(景福宮) 중건의 중지와 취렴(聚斂)의 시정을 촉구하는 등 최초로 대원군의 정책에 반대하여 배척을 받음.


     조선 말기 성품이 강직한 성리학자로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실천케 하여 외세침략에 대한 치열한 의병운동으로 저항, 국권을 지키게 함. 저서로는《주자대전집차(朱子大全集箚)》,《주자대전집차의집보(朱子大全集箚疑輯補)》,《송원화동사합편강목(宋元華東史合編綱目)》,주역전의동이석의(周易傳義同異釋義)》,《주역전의동이석의(周易傳義同異釋義)》,《화서아언(華西雅言)》,《화서문집(華西文集)》등이 있음. 화서 이항로(1792-1868)는 조선조 말기사회의 시대적 현실에 대응하려는 논리로 위정척사사상을 전개하였던 재야지식인이다. 그는 19세기 중엽 서세동점의 동아시아 정세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대응론을 실천운동으로 행동화한 대표적 성리학자이며 위정척사사상가였다. 이항로의 시대인식은 그의 보국양이(保國攘夷)와 위정척사에 기초하여 민족위기의식에서 구국활동으로 시작한 위정척사 상소운동과 화서학파 문인에게 강렬한 항일의병투쟁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하게 방향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이항로의 역사인식에서 비롯한 현실적 모순과 과제로서 현실대응논리와 실천방법은 위정척사운동과 항일의병투쟁으로 일제강점기 한민족 독립운동의 원류로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시대인식에서 독특한 위치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현대적 의미와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 선구자적인 인물이었다.


     개항 직전의 시대상황과 국제정세는 대외적으로 외래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았으며, 대내적으로 봉건적 수탈과 신분제도 폐기 등 체제 변혁적 요구를 주장한 민중항쟁의 도전을 받았다. 따라서 이 시기에 당면한 역사적 과제는 국내의 봉건적 사회모순을 극복하는 동시에 외래자본주의 침략세력을 막아내는 일이었다. 이 같은 국가위기의식에 대해 국내에서는 사회운동으로 개화운동·동학운동·위정척사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었다. 서구열강의 동양진출은 전혀 이질적인 문명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성을 가졌던 유교문화권의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이라는 유사한 대응패턴을 보였다.


     이항로는 현실적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강인한 저항정신으로 문화적 전통과 자국권·자민족권을 지키기 위한 방법론은 전통적인 질서를 재정비하여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성을 통찰하는 대비책이었다. 이는 민족자주·자존의식을 발휘하면 외세침략도 저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노골적인 외세침략의 위기상황에서 이항로는 이 같은 자국가·자민족·자문화 중심주의의 자주·자존의식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문제의식과 시대인식에 따른 민족주의적 실천운동으로 위정척사운동과 화서학파의 항일의병운동이었다. 19세기 중엽 유교문화권인 한·중·일 동양3국은 비슷한 시대에 서양충격의 외압으로부터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화서학파의 대외인식과 동일하게 고심했던 청나라의 왜인(倭仁)도 주자학적인 입장에서 중화의 전통문화는 서구문화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 미토학(水戶學)의 주창자들과 오하시 도쓰안(大橋訥菴)의 유교문화 입장에서 서구문화 수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화서 이항로는 서양충격에 의한 서구 열강문화를 미개한 이질문화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서양문화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인류문화와 도의의 중심인 중국의 문화적인 영향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통적 가치와 서구문화는 사람과 동물이 다르듯이 서로 나란히 설 수 없고 통할 수도 없다는 논리였다.


     이항로의 사상논리인 이기(理氣)·화이(華夷)·인수(人獸)·의이(義利)와 같은 주자학의 도덕적 개념을 가지고는 자국과 국제사회와의 관계는 이제 파악할 수 없었다. 동양천지는 이제 서양세력의 등장으로 약육강식이라는 노골적인 힘의 관계에 의한 위기상황이었다. 그러니 화서학파 문인들이 국제세계를 보고 해석하는 유일한 틀은 오로지 오랫동안 믿어왔던 주자학적 존화양이의 문화개념이었다. 그들은 이 문화개념을 그대로 유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황전개 속에서 명분론적 국제질서관을 서양·일본에 그대로 적용시켜 그것을 재확인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여 개항기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이항로는 외세인 일본세력의 침입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었다. 일본에 의한 개항 및 개화가 일본의 식민지정책과 식민지화로 귀결됨으로써 이항로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예언은 바로 적중하였던 것이다. 화서학파 문인들은 개항전후 현실대응론에서부터 일제침략의 항일민족운동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대외 항쟁사 속에서 국권을 수호하려고 본격적인 이론과 방법을 정연하게 체계화하였다. 이런 속에 잉태한 완강하고도 투철한 반침략적 민족정신의 항일의병운동은 화서 이항로의 시대인식에 따른 민족주의사상 실천운동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다. 특히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비등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인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의 한 지방정부사로 왜곡,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관료들의 정치적 망언, 그리고 끊이지 않는 독도(獨島) 영토문제 등 한·중·일 역사문제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이웃나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 해석하는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역사학계의 잘못이 분명히 시정되어야 하겠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현실상황에서 이항로 생애는 미래사회를 주도해 갈 신세대에게 과거사실의 역사적 의미를 잘못 인식·전달하는 기성세대의 유감스러운 과오를 해결하는 시대의식과 실천운동의 방향제시를 하고 있다.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세계시민적 관점을 심어주는 것이 최근 역사교육의 흐름이며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문화의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2004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화서 이항로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떠한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야 하겠는가 하는 생활문화인으로서의 시대인식과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 그리고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지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항로의 삶을 조명해 보고 그의 사상이 지니고 있던 특성과 행동을 살펴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 살아온 역사적 역할을 되돌아보면서 21세기 지식인 사회의 새로운 좌표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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