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김창조(樂聖 金昌祖)
1856~1919 / 한말·일제강점기의 가야금산조의 명인
생애 및 업적
  •  김창조(金昌祖) : 1856~1919. 한말·일제강점기의 가야금산조의 명인. 호는 樂聖.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 가락을 도입하여 오늘날과 같은 가야금산조의 틀을 만들어, 대표적인 한국의 유산으로 만듦. 해금을 비롯하여 대금, 퉁소 등 모든 악기에 능통하였고, 김창조 가야금산조 탄생을 계기로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피리, 아쟁, 새납 등 악기마다 산조가 작곡됨.


     김창조(1856~1919)는 전남 영암의 세습적 율객(律客)의 가정에서 태어나 근세 민간 기악 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빛나는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1890년경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의 틀을 갖춘 하나의 음악 형식인 가야금산조를 작곡함으로써 이 땅의 모든 산조 음악의 효시가 된 것이다. 김창조의 산조 창작은 한국 문화유산 중 탁월한 가치를 지닌 예술로서 100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악기마다의 기악 독주곡으로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워왔다. 가야금산조 창작 이후 10여년 후에는 김창조 산조 형식과 양식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백낙준에 의해 거문고산조가 창작되었고, 뒤를 이어 박종기, 강백천에 의해 대금산조, 지용구에 의해 해금산조, 전용선에 의해 단소산조, 편재준에 의해 퉁소산조, 이충선에 의해 피리산조, 한일섭에 의해 아쟁 및 새납산조가 창작되었다. 특히 김창조는 침체된 사회상을 배경으로 예술가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렬한 내적 욕망을 형이상학적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며 범세계적인 불후의 명작을 남김으로써 한국 음악사에 「산조는 혁명」 그 자체가 되었다.


     김창조 가야금산조의 구성은 산조의 음악적 기초를 판소리 음조에 확고하게 의지하고 판소리 장단 특성과 결합하여 음조적 성격을 나타내었으며, 초기 산조 장단 구성은 다스름 가락, 진양조 5장, 중모리 5장, 중중모리 3장, 자진모리 5장으로 짜 넣었고, 3기법(三機法)인 慢機(느리게), 中機(보통속도), 數機(빠르게)를 도입하였고, 후기의 산조 계승자들은 엇중중모리, 휘중중모리, 엇모리, 굿거리, 휘모리, 단모리 및 늦은중모리와 다양한 형태의 중모리 등 여러 가지 장단들을 첨가하였다. 한국에 김창조 산조는 1995년 북한평양음악대학에 유학하여 안기옥에게 직접 김창조 산조와 안기옥 산조를 전수받은 김진(1926 ~ 중국전연변예술학교 교장)에 의해 양승희에게 전해졌으며, 1999년 「스승 죽파 타계 10주년 추모 양승희 가야금 독주회」에서 처음 연주되었고, 2001년에는 영암 가야금 현창사업 세미나에 맞추어 김창조 선생께 바치는 CD가 출반되었다. 가야금산조 대부분의 명인(안기옥, 정남희, 김광준, 한성기, 정운용, 강태흥, 유동혁, 김병호, 최옥삼, 김윤덕, 성금연, 김죽파, 함동정월)은 김창조 가계에 속하며 이러한 김창조 산조 가계의 번창하는 계보는 김창조 산조의 구조가 완벽하게 짜인 불후의 명작인 점과 김창조가 산조의 창시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북한의 자료를 보면 1961년「우륵의 음악 활동개시 141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 행사로서 북한, 소련, 중국에서 국제적으로 대대적인 사업을 개최하여 학자와 명인들도 대거 참여케 함으로써 민족음악의 위대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으며, 우륵을 추앙할 때마다 반드시 김창조의 업적을 함께 기리어 추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각 기악 분야의 인간문화재를 지정하여 「산조」를 국가보호 차원에서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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