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원효 (元曉)
617~686 / 승려, 대중교화에 힘쓴 민족사상가
생애 및 업적
  •  원효는 삼국간의 전쟁과 통일이 있었던 격변의 7세기에 살았으며 경산에서 태어나 15세경에 출가했다. 수행과 학문에 매진하는 젊은 시절을 보내고 44세에 오도(悟道)했다. 이 무렵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얻고 환속하여 소성거사(小性居士)로 자처했다. 그리고는 가무로 천촌만락을 누비며 대중을 교화했고 밤을 지새우며 학문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그의 학문연구는 만년까지 계속되었고 절에서 머문 적이 많았다. 55세 때 행명사에서 <판비양론>을 저술했고, 분황사에서는 <화엄경소>를 지었으며, 고향의 옛집에 지었던 초개사에서 현풍(玄風)을 드날렸다.


     원효는 당시 신라사회에서 거리의 대중에서부터 왕실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던 엄장이 그에게 도를 구함에 쟁관법(錚觀法)을 만들어 지도했던 이야기며, 46세 때 김유신이 이끌던 신라군의 암호 문서를 해독하여 위기에서 구하고, 심한 종기를 앓아 고생하던 왕비를 위해 <금강삼매경론>을 쓰고 이를 황룡사에서 강의하던 이야기 등은 원효가 당시 신라사회에 있어 정신적으로 큰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