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상징

금줄
선정취지 및 필요성
  • 금줄문화는 ‘금하는’ 의미를 지닌 신성스러운 줄이었다. 그러나 금줄문화는 점차 소멸을 거듭하고 있으니, 가령 아기를 낳을 때 치던 인줄도 산부인과와 더불어 사라졌다. 금줄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 원형질의 하나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금줄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소급되는 것으로 비정되나 ‘쓰이지 아니한 무형의 문화’인 관계로 정확한 연대를 기술할 수는 없다. 금줄의 출처는 민중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확인된다. 우리의 금줄문화는 지역경계(금기)와 신성구역 선포라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지니고 있다. 두 기능은 막상 동전의 양닢처럼 한 가지다. 가령 우리의 마을 굿에서 동구 밖을 금줄로 막는 것은 더 이상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경계표시 역할도 겸하는 탓이다. 이렇듯 동네에서, 혹은 아기 낳은 집 등에서 아직도 확인할 수 있다. 금줄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글자 그대로 ‘금’(禁)줄은 금지(禁止)의 뜻을 지닌다는 시각이다. 신생아 집에 늘인 금줄은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데 목적을 둔다. 당산제나 마을 굿을 위해 동네입구나 제관의 집, 당집에 쳐두었던 금줄도 신성구역과 일상구역을 구분하고 잡신의 침입을 막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들 금줄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바로 걷어낸다. 두 번째 시각은 금줄을 ‘금’(禁)이 아니라 ‘검’으로 보는 견해다. 금줄은 우리들 잠재의식의 밑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독특한 의례문화다. 새끼를 꼬고, 줄을 걸쳐놓는 행위 하나하나는 엄숙한 의례다. 보잘 것 없는 한낱 새끼줄, 한 토막의 새끼줄에 의례의 엄숙함을 싣고 있다. 원래 금줄은 하나의 성역표시물이었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라는 성역, 마을을 지켜주던 성역, 간장과 술을 숙성시켜주던 성역. 그러나 이제 성역은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에 인간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성역을 갖기 시작하였다. 민족의 생활 속에 신앙처럼 자리 잡았던 금줄이라는 옛 ‘성역’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정신적 문화유산을 제대로 가꾸는 일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금줄은 비단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이웃 일본에 가면 우리와 똑같이 짚으로 만든 금줄문화를 지니고 있다. 비교문화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금줄문화는 오키나와, 일본 남부의 금줄과 더불어 바로 도작(稻作)문화의 소산임이 분명해진다. 북방 시베리아의 금줄은 말총으로 만들었고 서낭당처럼 오색 천을 붙들어 매 놓았다. 몽고에서는 털로 된 줄을 늘여놓는다. 금줄의 민족 문화적 특수성과 인근문화와의 보편성이 확인되는 셈이다.
기대효과
  • 가장 현대적인 도심 공간에서도 신성스러운 금줄은 오히려 빛을 발할 것이다. 가령, 일본의 도심 곳곳에 존재하는 신사는 신성한 공간으로서, 특히 도리로 상징되는 문의 상징은 외국인들에게 일본문화에 대한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다. 흡사 ‘문의 나라’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한국적 이미지를 강력하게 부각시키는데 금줄만한 상징물도 드물 것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금줄은 문화적 상징성이 강한 대신에 그 자체가 어떤 캐릭터상품 등으로 곧바로 전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금줄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통하여 한국문화의 상징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지니며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특히 문화 예술적 행위로서, 영상미학으로서 금줄은 상품화 될 수 있다. 비록 아기탄생의 금줄이 산부인과 더불어 사라졌지만 생명의 외경심을 일깨워주는 차원에서도 재활용될 수 있다. 성과 속의 공간을 가르는 금줄의 문화적 정화력은 일본의 경우 실생활에서 널리 일상화되어있는 상태이다.
참고자료
  • Sigmunt Freud, Totem and Taboo 주강현,『왼손과 오른손 - 좌우상징, 억압과 금기의 문화사』,시공사,2002 M.엘리아데,『이미지와 상징 - 주술적 종교적 상징체계에 관한 시론』,까치,1998 <주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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