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길거리 응원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자그마한 초를 가지고 집단적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한국문화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다가온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해낸 또 다른 문화적 결과물로 인정된다. 지난 권위주의시절을 관통하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의 성장이 열매 맺은 민주주의의 문화적 상징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촛불시위는 예전에도 있었던 전통적 시위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촛불이 일구어내는 수만 개의 불꽃은 그 자체 성속(聖俗)이 교차하는 제의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촛불은 예로부터 종교적 제의의 빠질 수 없는 도구였다. 촛불이 시위의 도구로 사용됨은 사위 자체가 제의적 절차로 접어들거나 제의 자체를 수단으로 차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촛불시위는 반드시 밤에 이루어진다. 밤이란 공간은 제의적으로는 성스러운 공간이며, 신이 현현(顯現)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의 현현을 위해서는 촛불, 혹은 향 같은 매개물이 필요하다. 시위대는 밤 시간을 이용하여 촛불을 통하여 무언가의 공동체적 지향점과 갈구하는 바를 표출하곤 한다. 촛불시위가 평화적으로 시작되고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음은 촛불 자체의 평화적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촛불시위는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촛불시위가 한국문화의 전형으로 확인된 것은 미군장갑차에 의하여 죽은 미선이· 효선이의 죽음을 달래는 것에서 본격화되었다. 그 이전에도 촛불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한미군문제에서 촉발되었다. 촛불시위는 애초에 광화문에서 벌어졌다. 사실 광화문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 권력의 중심지요, 자본이 장악한 곳이요, 미디어자본까지 들어찬 길목이다. 민중들이 광화문의 주역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 거리에서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을 계기로 낭장판과 난장트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순수한 스포츠행사인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난장크기였다. 이같이 제한된 조건에서 행해진 난장트기였지만 광화문이 생겨난 이래로 ‘오로지 놀기 위하여’ 광화문거리가 시민들에게 ‘점령’당하였다. 이 같은 사건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촛불시위가 벌어졌음은, 이들 두 사건이 무관하면서도 유관함을 알려준다.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광장으로 나섰고 그 나섬에 익숙해져있으며, 촛불사위가 되었건 길거리응원이 되었건 간에 광장의 문화에 익숙해져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준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촛불시위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각각의 나라마다 민주주의의 단계가 다르며 변별성이 존재한다. 한국의 촛불시위는 지난 20세기 100여 년간 한국사람의 힘으로 성취하는 독특한 문화적 성과물로 인정된다.
기대효과
  • 시민들이 과장으로 나서는 일은 국법으로, 혹은 경찰력으로 억제 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촛불시위가 가능해진 대목에는 한국 민주주의가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나름의 힘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으며, 평화적 시위문화의 한 상징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촛불시위는 우리시대의 평화적 문화의 상징물로 완벽하게 정착해야할 것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시위 자체가 어떤 문화산업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촛불시위 같은 문화적 장치를 통과하면서 더 이상 시위가 반경제적인 것만은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 저항과 시위가 갖는 충돌의 미학 대신에 평화와 공존의 의례가 촛불시위 같은 평화적 시위를 통하여 정착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전반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참고자료
  • 주강현,『리드 신드롬과 히딩크신화; 붉은 축제 - 신명의 거리굿 』, 중앙M&B M.엘리아데, 『聖과 俗』 <주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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