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돌하르방
선정취지 및 필요성
  • 돌하르방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최대의 석조물이다. 그러나 정작 돌하르방의 세계화는 요원하다. 제주도가 국제자유지역으로 바뀌는 판에 제주도의 최고의 상징물일수 있는 돌하르방에 관한 재인식도 함께 요청된다. 오늘날, 제주도민들에게 돌하르방은 단순한 읍성수호신의 의미만 가진 게 아니다. 이제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문화적 상징이자 자부심의 표식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끊임없이 새로운 돌하르방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잔존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다. 즉, 돌하르방은 과거의 문화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문화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하르방은 할아버지라는 뜻. 따라서 돌하르방은 ‘돌 할아버지’다. 돌하르방의 공식화는 불과 수십 년 안짝이며 해방 이전만 해도 돌하르방이란 말은 없었다고 한다. 돌하르방이란 명칭 사용이 결코 오래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다행인 것은 근래에 붙여졌으나, 듣기에도 친근하고 썩 어울리는 이름 같다. 돌하르방의 ‘출생내력’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런데 어떤 단서는 하나 발견된 것 같다. 어느 날 남도의 벅수가 배를 타고서 남해바다를 건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여, 제주도 돌챙이(석수쟁이) 한 명이 남도를 갔다가 잘 생긴 조선후기 돌벅수를 만났다. 돌챙이의 고향은 정의현, 지금의 성읍 민속마을이다. 돌챙이는 돌아와서 입상을 만들었다. 물론 그는 손에 익히고 있던 탐라식의 조각형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새롭게 들어온 양식을 결합하여 돌하르방을 창조하였다. 이렇게 추론하면, 돌하르방과 벅수연관설이 분명해지는 듯하다. 조선후기에 전국에 넓게 퍼진 석장승, 또는 벅수와 같은 민중 돌 조각품과 돌하르방의 조형적 상통점을 따져보자. 주먹코, 왕방울 눈, 파격적인 해학성, 푸짐한 표정……서로 닮은 게 하나 둘이 아니다. 각각의 민중적 조형물들은 나름의 풍토 속에서 자라나왔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성격은 하나로 여겨진다. 제주도 돌하르방이 조선후기 장승문화에서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같은 돌하르방의 조형성이 갖추어지기까지 제주도 본토의 토착적 요소들이 총화 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문화란 어떤 영향관계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경우는 없다. 늘 상대적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국가적으로 읍성을 축조하면서 육지부의 석상과 같은 의미에서 돌하르방을 세운 것은 분명하나, 토착적인 제주도 석상전통이 그 밑바탕을 이루었음은 분명하다. 돌하르방은 한국에서 제주도에만 존재한다. 제주목(제주시) 21기, 대정고을 12기, 정의고을 12기,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2기(제주시에서 옮김), 모두 합해서 47기가 있을 뿐이다. 원래는 48기였는데 1기는 소실되었다. 제주 3읍이었던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있고 주변의 마을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읍성수호신이었음이 분명하다. 정낭을 걸쳐놓았던 구멍이 있는 경우로 미루어 보아 수문장 역할도 분명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돌하르방은 독특한 것이니 마땅히 문화상징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세계 어느 나라나 자국의 문화적 상징물로서 석상전통이 존재한다. 가령 이스터섬의 석상도 그러하다. 대륙에서 가장 머나먼 섬 중의 하나. 지도에조차 잘 나타나질 않는다. 가장 가까운 섬에서만 1,250마일 떨어졌고, 남아메리카 서쪽에서는 2,500마일 떨어져 있다. 섬 주민들은 태평양의 폴리네시안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들은 해안을 따라서, 혹은 황량한 화산 주변에 석상을 세웠다. 거대 석상을 무려 1,000여개씩이나 세운 이유는 씨족과의 신앙물을 세우는 경쟁 심리로 이루어졌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석상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반면에 같은 석상이라도 몽골에 있는 훈촐로 같은 것은 이스터섬에 비하면 훨씬 덜 알려졌다. 몽골 각지에 약 500여기의 석인상이 흩어져있다. 훈촐로로 불리는 석인상은 고대 유목민족의 습관이나 신앙 및 사회제도 등을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훈촐로에는 우리의 돌하르방과 외형이 너무도 비슷한 것이 있고, 한때 몽골의 지배기도 있어 몽골과 제주의 친연성이 그럴 듯하게 제기된다. 몽고벌판의 훈촐로가 탐라까지 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논란이 많은 주장으로 여겨진다.
기대효과
  • 국제자유화로 나아가는 관광제주의 미래를 구상하면서 가장 강력한 제주도 섬의 문화적 상징물로 대외적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 즉, 돌하르방은 그 자체 제주도란 섬을 알릴 수 있는 뛰어난 조형물이다. 제주도의 문화상징이 매우 다양하다고 하여 복잡하게 설명하면 외국인들에게 각인될 수 없다. 중국의 석사자상이 석상으로서 중국 곳곳을 장식하여 문화상징물로 작용하듯이 돌하르방도 충분히 국제화될 수 있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 제주도와의 연계 하에 돌하르방의 산업화, 상품화를 모색 ○ 기존의 돌하르방 세우기에서 벗어나 현대적 조형물로도 변신이 가능 ○ 마스코트, 개인소장 조각품 등으로 산업화가 가능(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종이찰흙으로 만든 돌하르방과 동자석이 실험 판매되고 있음) ○ 돌하르방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상물 제작 가능
참고자료
  • 주강현,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한겨레신문사, 1996 <주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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