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잠녀(해녀)
선정취지 및 필요성
  • 해녀는 몸에 아무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잠수해서 전복ㆍ소라ㆍ미역ㆍ우뭇가사리 등 해산물을 직업적으로 채취하는 여자를 말한다. 해녀의 본고장인 제주에서는 이들을 ‘잠녀(潛女)’ 혹은 ‘잠수(潛嫂)’라 부르는데, 이들 잠녀는 전통적 잠수문화의 상징이자 제주여인의 강인한 삶과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는 결정체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잠녀는 자연발생적인 생업수단의 일환으로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문헌상으로는 고려 숙종 10년(1105), 제주도에 구당사(勾當使)로 부임한 윤응균(尹應均)이 “남녀 간의 나잠(裸潛)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린 기록이 있다. 또 조선 인조 6년(1628)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던 이건(李健)이 쓴 『제주풍토기』에도 당시 제주도 잠녀에 대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여자로서 바다 속에 들어가 해조류 및 패류를 잡는 사람들을 잠녀(潛女)라고 한다. 2월부터 5월까지 바다에 들어가 이것들을 잡는다. 잠녀들은 전신나체로 바다에 들어간다. 갈고리를 가지고 바다에 헤엄쳐 다니다가 해저에 패류 등이 있으면 바다 속 깊이 들어가 잡아 올린다. 남녀가 서로 어울려 있어도 수치스러움을 모르고 누가 보고 있어도 상관없이 이들은 이것을 잡아 팔아서 의식(衣食)을 해결해 왔다. 심지어 이렇게 잡은 것을 관가에까지 바쳐야 했기 때문에 잠녀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을 관의 명령대로 바치지 않을 때는 엄한 벌을 받는 일이 있기 때문에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한 탓에 잠녀들은 빈곤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사실 조선시대 잠녀는 국가의 진상역에 얽매인 존재였다. 처음에는 미역 등을 주로 따다가 포작인(鮑作人)의 피역(避役)에 따른 역 담당자의 부족으로 17세기말부터는 점차 전복을 따는 ‘비바리’가 되었다. 조선후기의 ‘출륙금지령’과 타 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여정(女丁)’의 존재, 독특한 ‘여다(女多)’의 역사적 상황 등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제주도를 떠나버린 남자의 일을 대신 수행하는 과정에서 잠녀에게 일이 과중되어 고역이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 여자들은 7~8세부터 헤엄치는 연습을 시작하고 15~16세에는 독자적인 잠녀로 성장하여 40세 전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60세 전후까지 물질을 한다. 잠녀들은 대부분 농사일을 겸하는데 잠수작업은 주로 봄에서 가을까지 이루어진다. 그녀들은 보통 수심 5m에서 30초쯤 작업을 하고 물 위로 뜨며 때로는 수심 20m까지 들어가고 2분 이상 잠수하기도 한다. 기량에 따라 상군(上軍)·중군(中軍)·하군(下軍)으로 나뉜다. 장비로는 부력을 이용하여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태왁’, 잡은 해산물을 담는 ‘망사리’와 해산물 채집을 위한 ‘빗창’, ‘갈고리’, ‘소살(일종의 작살)’ 등을 몸에 지니고 잠수한다. 물안경은 ‘눈’이라 하는데 지금 사용하는 ‘왕눈’이라는 큰 물안경은 1950년대부터 쓰기 시작하였고, 그 전에는 ‘족세눈’이라는 작은 쌍안경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물옷은 무명 잠수복에서 고무 잠수복으로 변했다. 1876년 개항으로 일본 어민의 진출과 함께 제주어장이 황폐화되면서 잠녀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되었다. 이에 전국의 여러 해안으로 출가(出稼)하여 조업했으며, 객주의 인솔에 따라 일본각지와 블라디보스토크, 랴오둥 반도[遼東半島]의 다롄[大連], 산둥 성[山東省]의 칭다오[靑島]까지 진출했다. 1920년대부터 8·15해방까지 일본각지에 약 1,500명, 한반도 연안에 약 2,500명이 출가한 것으로 전한다. 최고 9,000명까지 헤아렸던 잠녀는 최근에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불과 몇 백 명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물 자맥질을 하면서 해산물을 캐내는 사람들은 세계도처에 존재한다. 다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생업수단으로서 물질을 하는 ‘해녀’는 한국과 일본에만 분포한다. 물론 일본에는 ‘해사(海士)’라는 남성잠업자도 상당수 존재한다. 어쨌든 해녀·해남의 분포지역이 한국과 일본으로만 한정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제주도는 여성잠수업자가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기대효과
  • 제주도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섬학회에서는 잠녀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고, 2005년 12월에는 북제주군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내에 ‘제주해녀박물관’이 개관된다. 이를 통해 전통적 잠수문화의 상징이자 제주도의 상징인 잠녀의 존재가 총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단순히 박물관 하나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특성화 박물관으로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면, 보이는 ‘잠녀이미지’가 아니라 관람객이 함께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잠녀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 다양한 캐릭터상품 개발 이미 제주에서는 잠녀나 돌하르방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잠녀의 경우 대체로 망사리를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잠녀가 사용하던 물품자체의 형상화도 필요하다. 망사리나 태왁의 이미지를 활용한 목걸이나 귀걸이, 반지, 열쇠고리, 휴대폰줄 등으로 캐릭터상품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잠녀 애니메이션 제작 잠녀들은 맨몸으로 물에서 작업하는 탓에 신앙심이 유독 강하다. 그네들이 모시는 신들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보급한다면 제주 잠녀문화의 상징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 관광상품개발 제주도 관광은 아직 한라산 중심이다. 이제는 바다로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잠녀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에서 몸소 그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 어렵다면, 잠녀들의 정서를 체험할 수 있는 신당답사프로그램 등을 육성하여 한라산이나 보문단지류의 관광에 식상한 다양한 관광객 층을 흡수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강대원,『해녀연구』, 한진문화사, 1970. / 김영돈,『한국의 해녀』, 민속원, 1999. 박찬식,「제주해녀의 역사적 고찰」,『역사민속학』제19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04. <이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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