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서당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서당은 향촌사회의 사설 교육기관으로서 초등단계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한국인들의 교육열을 기초교육의 단계에서부터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서당이다. 음주가무로 특화된 한국인의 정서 못지않게 서당은 책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힘쓰는 한국인의 교육적 정서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지방의 민간교육기관으로 세워진 경당을 서당의 역사적 출발로 삼기도 한다. 송나라 서긍이 전하는『고려도경』에는 여염집의 자제들은 어려서 스승에게 경을 배우고 조금 자란 후에는 벗과 더불어 절간에서 글을 익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민간의 사설교육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당은 조선중기에 향촌사회에서 유학적 이념과 질서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결부되면서 그 사회적 의미가 확대되었다. 17세기에는 사족들이 약화된 재지기반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서당을 중심으로 사족이 결합하는 측면이 보였다. 18세기에는 비사족 중심의 서당경영과 서당교재의 출현이 눈에 띠었다. 한편 서당계의 형태로 운영되는 서당도 등장하였다. 서당은 훈장을 초빙하여 자제교육을 맡기는 사숙 또는 독서당의 형태가 있었으며, 문중에서 학계나 학전을 마련하여 운영하는 동계서당의 형태도 있었고, 훈장이 생계유지를 위해 운영하는 자영서당의 형태도 존재했다. 대부분의 서당은 훈장, 접장, 생도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강독(講讀), 제술(製述), 습자(習字)의 분야로 교육을 진행하였다. 강독교재는 대개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사서, 삼경, 사기 등이었으며 조선중기 이후로는 자체적인 아동의 교재개발과 보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조선말에 사회경제적인 모순으로 서당교육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19세말 근대교육의 전개와 일제강점으로 인해 많은 난점을 안게 되었다. 1918년 <서당규칙>의 공포로 통제를 받게 되었고 1929년에 이르러 근대적인 개량서당이 출현하면서 전통교육의 활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서당은 초등교육과 저항교육의 산실역할을 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한국과 같은 형태와 같은 서당은 없음
기대효과
  • 현재에도 일부 서당을 중심으로 한문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하계방학을 이용해 아동에게 한문강좌와 전통예절강좌를 제공하는 서당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초등교육이 의무화된 현실 속에서 기초교육을 보충하는 사설 교육인 이른바 “학원”이 서당을 대체하였다. 서당이나 학원은 기초교육을 충실하게 마무리하겠다는 한국인의 교육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하계나 동계방학을 이용한 서당식 전통교육이 집중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집단적인 근대식 교육과 개별적인 과외교육과는 다른 교육문화의 체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정순목,『한국서원교육제도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1979. 손인수,『한국근대교육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최종성>
관련이미지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