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이순신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이순신은 1960년대 국가적 차원에서 충(忠)과 호국(護國)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서 ‘성웅 이순신’으로 급격히 부각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후대 ‘역사 만들기’의 산물일 뿐이다. 세계 해전사에 남긴 이순신의 위상이 결코 축소되거나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순신은 분명 ‘해양강국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해양인물임에 틀림없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이순신은 1545년 3월 8일, 한성부 건천동에서 아버지 이정(李貞)과 어머니 초계변씨(草溪卞氏)사이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1572년(선조5)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訓鍊院別科)에 응시하였지만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다리부상으로 실격되었다. 32세가 되어 식년무과의 병과에 급제한 뒤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첫 관직에 올랐다.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董仇非堡權管)과 발포수군만호(鉢浦水軍萬戶)를 거쳐 1583년(선조16)에는 건원보권관(乾原堡權管)과 훈련원참군(訓鍊院參軍)을 지냈다. 1586년(선조19)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거쳐 조선보만호(造山堡萬戶)가 되었다. 이후 1589년(선조22)에는 선전관(宣傳官)과 정읍현감(井邑縣監) 등을 거쳐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선조24) 2월에 진도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다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2월 13일 정읍을 떠나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 현재 여수)에 부임했다. 부임 후 왜구의 내침을 염려하여 바로 영내 각 진의 군비를 점검하는 한편, 후일 철갑선(鐵甲船)의 세계적 선구(先驅)로 평가될 거북선(龜船)의 건조에 착수했다. 임진왜란(1592~1598)이 발발하자, 이순신은 옥포해전(1592.5.7), 사천포해전(1592.5.29), 한산도대첩(1592.7.8), 부산포해전(1592.9.1), 명랑대첩(1597.9.16), 노량해전(1598.11.19)에서 큰 공을 세우고 11월 19일에 54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이순신은 무인으로서 뿐만 아니라『난중일기(亂中日記)』와 시조·한시 등 여러 편의 시문을 남겼다. 1604년(선조37) 10월,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녹훈되고 풍덕부원군(豊德府院君)에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1643년(인조21)에 충무(忠武)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1704년(숙종30)에는 유생들의 발의로 1706년 아산에 현충사(顯忠祠)가 세워졌다. 1793년(정조17) 7월 1일 정조의 뜻으로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되었고 1795년에는 정조의 명으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규장각 문신 윤행임(尹行恁)에 의해 간행되어 오늘에까지 전한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각국마다 해전영웅들이 존재한다. 한산대첩을 성공으로 이끈 이순신 외에도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Salamis)해전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과 중국 명대(明代) 남해원정의 총지휘관이었던 정화(鄭和), 1588년 칼레(Calais)해전의 하워드(Howard)제독, 그리고 1805년의 트라팔가(Trapalgar)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넬슨(Nelson)제독, 화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그 나라에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추앙되고 있다.
기대효과
  • 최근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해양인물 이순신이 안방까지 파고들어 대중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간 정치색으로 의식되어진 ‘성웅 이순신’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부각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금번에 이순신이 한국의 인물상징 중 하나로 선정된 만큼, 앞으로도 이순신이 다각도로 조명되고 일반인에게 다가간다면 단순히 이순신 받들기의 차원이 아니라,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해양부국임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신라의 해양진출인물 장보고와 더불어 해양수호인물 이순신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해양인물상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장보고의 경우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통해 친근한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반면, 이순신의 경우는 아직 딱딱한 위인전기의 주요 출현인물이라는 인상이 짙다. 21세기의 이순신을 키우기 위해서는 21세기에 맞는 이순신 상(象)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작업은 딱딱한 위인전기 이외의 다양한 텍스트개발과 CD·DVD 제작, 그리고 그것들을 일선 교육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동시에, 세계4대 해전의 영웅인 이순신을 국외로 알리는 일도 시급하다. 이번 선정을 통해 이순신 캐릭터개발과 홍보에 박차를 가한다면, 세계의 해양영웅 이순신을 낳은 해양강국 대한민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박혜일,『이순신의 일기』,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김명교,『CEO 이순신, 불멸의 리더쉽』, 은금나라, 2004. 이순신역사연구회편,『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비봉출판사, 2005. <이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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