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종묘와 종묘대제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전통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와 의식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종묘제도는 이미 삼국시대에 도입되어 정착하였으며 고려시대에도 종묘가 있었다. 조선왕조가 시작되자마자 태조 이성계는 종묘건설부터 독려하였다. 처음에 창건된 종묘는 오늘날의 거대한 규모가 아니었다.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그리고 각 부인의 신위만 모시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조선왕조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왕들이 늘어났고 모셔야할 신위가 많아졌다. 그래서 영녕전이라 부른 별묘라고 특별한 제각을 지어서 앞의 4대 조상을 별도로 모시게 되었으며, 본래의 건물들도 자연스럽게 증축이 이루어져 오늘날 같은 대규모 건축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27대에 걸친 많은 임금과 부인들을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같은 전란으로 불에 타서 재건한 건물들이다. 전쟁이 끝나자 가장 먼저 재건에 착수한 것은 무너진 궁궐이 아니라 종묘였다. 그만큼 종묘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한국의 종묘대제는 500년 이상을 단 한 번도 끊어짐 없이 이어져온 국가적 제사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국왕의 선대 조상들을 모신 종묘는 국가의 운명은 물론이고 왕실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들 제도는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모두 고대 중국의 예법에서 유래한다. 국조오례, 즉 국가에는 다섯 가지 예가 있으니 그 중 으뜸이 제사지내는 길례이다. 길례는 제사의 규모와 품격에 따라서 대사, 중사, 소사로 나뉘는데 종묘에 지내는 종묘제례는 가장 중요한 대사에 속한다. 지금도 매년 5월에는 전국의 왕실 후손들이 모여들어 종묘제례를 올리고 있다. 건축물과 제사 두 가지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음은 이 같은 지속성, 그리고 한국 귀족음악의 정수로서 세계에 내놓아 손색이 없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종묘와 종묘대제의 방안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려는 각 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대효과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종묘와 종묘 제례악에 대한 제반 사항들 서비스하는 토털 홈페이지 정부에서는 종묘와 종묘대제를 좀 더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 실시에 협조할 수 있다. 그 방법은 종묘와 종묘대제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는 토털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일로 그 구성은 종묘를 가상공간으로 구현 해 내고, 해당하는 곳이 어느 곳인지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또한 종묘제례악을 연주 하는 모습을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해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한다. 종묘제례악이 진행되면서, 악기의 이름과 위치 등을 함께 설명하여 그 이해를 높인다. 또한 이를 영어, 일본어 등으로 함께 서비스 하여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종묘를 직접 찾아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종묘의 아름다움을 보다 널리 알리도록 할 필요가 있다. 종묘와 함께 고궁 관람 코스 만들기 종묘의 정전이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종묘에 직접 가보면 어떠한 것을 보고, 어떠한 것을 알아야 하는 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종묘는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전문 해설을 겸비한 관광 상품이 필요하다. 이는 접근성이 좋은 다른 고궁들과 함께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산 사람들’의 공간인 궁궐과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종묘가 지닌 다른 의미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관광 말미에 종묘 제례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면 보다 폭넓고 깊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궁 관광은 한국만이 지닌 독특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담아낸다는 데서 우리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미, 역사와 화려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관광 상품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궁관광 코스에 종묘와 종묘대제가 포함 된다면 우리 왕실문화의 모든 것을 체험하는 알찬 관광 상품이 될 것이다. 종묘대제 문화원형화 사업 종묘와 종묘대제는 조선의 사상과 제례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의 집에는 모두 사당이 있었고, 먼 길을 떠나거나 집에 돌아왔을 때는 사당에 들러 인사부터 했다. 이처럼 조상이 중요했던 나라에서 국가의 아버지인 왕을 조상으로 모신 사당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와 같은 제사 문화는 종묘대제에 여실히 나타난다. 종묘와 사직을 국가의 근본으로 여겼던 조선시대의 시대적 가치를 고려 할 때, 종묘와 종묘대제의 중요성은 매우 큰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종묘와 종묘대제를 디지털 작업을 통하여 보존하고, 이를 통해 다른 문화 사업에도 이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다.
참고자료
관련이미지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