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한글(훈민정음)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세종대왕이 창제 발간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이렇듯 세계 문자 역사에서 그 독창성이나 실용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고, 현재 우리가 쓰는 글자이기도 한 이 한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상징까지 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세종은 일찍이 우리의 말이 당시 우리가 쓰고 있던 문자인 한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말에 따른 우리글을 만들었다. 그러한 우리글을 만드는 가장 큰 목적은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 실생활에 있어 자유로운 문자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세종은 1443년 우리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이를 1446년에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훈민정음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運用法)을 밝힌 예의편(例義篇)으로 되어 있는데, 예의편은 제자해(製字解), 초성해(初聲解), 중성해(中聲解), 종성해(終聲解), 합자해(合字解), 용자례(用字例) 순으로 나뉘어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 『훈민정음』의 본문이다. 이 본문 뒤에 예의편의 내용을 더욱 자세히 설명한 해례편(解例篇)과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이 첨부되어 있다. 훈민정음 28자는 닿소리 17자를 아음(牙音, 대표 소리 ‘ㄱ’), 설음(舌音, 대표 소리 ‘ㄴ’), 순음(순音, 대표 소리 ‘ㅁ’), 치음(牙音, 대표 소리 ‘ㅅ’), 후음(喉音, 대표 소리 ‘ㅇ’) 등 혀, 입술, 이, 목구멍 등 발음기관의 모양과 이에 획수를 더하는 상형(象形)과 가획(加劃)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고, 닿소리 11자는 천(天, ‘.’), 지(地, ‘ㅡ’), 인(人, ‘ㅣ’) 삼재(三才)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훈민정음은 『훈민정음』에서 여기서의 28자모와 이의 운용법을 익히면, 사람의 말은 물론 “바람 소리, 학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무엇이든지 소리 나는 대로 글자로 쓸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어떤 소리든 적을 수 있는 표음 문자이고,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하였듯 참으로 익히기 쉬운 문자였다. 그래서 이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국이 된 것이다. 훈민정음 제정 초에 궁중의 악장인 <용비어천가>(1447)를 이 우리글로 만들고 세종이 개인적으로 <월인천강지곡>(1449) 같은 우리글 노래도 짓는 등 훈민정음은 궁궐에서부터 그 활용이 강조되었고, 이후 『삼강행실도』(세종~성종, 三綱行實圖),『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1518) 등 훈민적 차원에서의 한글본들이 간행되고, 『구급방언해』(1466, 救急方諺解), 『농사직설』(1429)의 번역본 등 평민들을 위한 실용 서적들도 보급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기까지도 조선의 공용문은 한문과 이를 다소 우리말식으로 간편하게 쓰는 서리층(胥吏層)의 이두(吏讀)였기에, 한글은 일반평민 그 중에서도 부녀자들 중심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다 1894년 갑오경장 때, “법률 명령은 다 국문으로 본(本)을 삼고, 한역(漢譯)을 부하며, 혹 국한문을 혼용함.”이란 법령이 공포됨으로써 비로소 한글이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공용문이 되었다. 이것은 188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이 순국문으로 띄워 쓰기 표기를 하는 등 당시 한글사용이 상당히 공용화한 데 따른 법령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국한문 혼용문이 주된 표기방식이 되었다. 종래 훈민정음은 실생활에서 ‘언문’(諺文), ‘반절’(反切), ‘암클’, ‘아랫글’ 등으로 불려졌다. ‘한글’이란 명칭은 주시경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는데, 1913년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일반화된 것은 1927에 한글사에서 펴낸 잡지『한글』때문이다.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나와 일반에 보급됨으로써 세종의 창제 이후 개인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된 한글이 일정한 원칙에 따라 공용화되었고, 이후 이에 대한 부분적인 수정들이 이뤄지며 오늘날의 우리글에 이르렀다. 한편 1926년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에 의해 ‘한글날’이 제정되었고, 1940년 경북 안동에서 1446년에 반포된『훈민정음』원본이 발견됨으로써 그 날짜가 오늘날처럼 10월 9일로 정해졌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현재 세계에는 5,000여 개의 말들이 있지만 이 중 100여 개만 그 글자를 가지고 있다. 또 이들 글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거나 다른 글자를 모방하거나 빌린 것들(일본의 ‘가나’, 영어의 ‘알파벳’)인데 비해, 특정한 시기에 과학적 방식에 의해 분명한 형태로 만들어져 한 나라의 글자로 사용되는 것은 한글뿐이다.
기대효과
  • 유네스코에서는 1997년『훈민정음』을 세계적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을 뿐 아니라,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하여 해마다 세계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 이렇듯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익히기 쉬운 글자로 인정할 뿐 아니라 이러한 한글을 창제 반포한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글이 우리 문화상징의 하나가 되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이 더욱 널리 알려질 것으로 기대 된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이번 국보1호 재지정과 관련되어 훈민정음, 팔만대장경, 남대문, 석굴암, 직지심경 등이 거론되었을 때, 젊은이들이 많이 참가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10중 8명은 훈민정음을 선정했다.(Focus 신문. 2005. 11. 9.) 이러한 젊은이들의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한글과 관계되는 어떤 문화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 준 것이다. 1996년 프랑스의 한 학술회의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모여, ‘한국어를 세계 공통어로 쓰는 것이 어떤가?’란 논의를 한 것과 같은 일(KBS1 방영. 1996. 10. 19.)도 한낱 꿈과 같은 일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 『훈민정음』(1446) 이기문, 『국어 표기 법의 역사적 연구』, 한국연구원, 1963 <손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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