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퇴계(이황)
선정취지 및 필요성
  • 퇴계 선생은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성인이다. 퇴계의 학문은 일본유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근대 중국과 일본의 지식인으로부터 주자 이후의 제일가는 성인으로 찬사를 받을 만큼 주목받은 바 있다. 한편 국내는 물론 미국의 유수대학은 물론, 독일, 일본, 대만, 중국 등에서도 집중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정도로 퇴계 이황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그가 기대승과 서신을 통해 논쟁을 벌였던 사단칠정론은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그의 독특한 인간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퇴계 이황(1501-1570)은 34세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 관직생활과 낙향을 거듭하면서 정치에 뜻을 두기보다는 구도에 가까운 독서생활에 전념함으로써 한국인에게 공부의 모델을 제공한 대학자이다. 40대를 넘겨『주자대전』을 입수했을 정도로 느지막이 주자학의 이해에 심취했고, 50대 후반에 이르러 주리론을 바탕으로 하는 사단칠정론을 전개했을 만큼, 그의 학문은 만년으로 갈수록 정밀해지고 깊이를 더해갔다. 퇴계의 만년의 결정체라 할 만한 『시무육조소』와『성학십도』는 선조임금에게 헌상된 것으로 유학의 근본이념과 삶의 태도로써 군주를 일깨우고 끊임없이 성찰하게 하는 혼혈의 힘을 기울인 저작이었다. 종교철학적으로 그는 사물의 근원인 理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실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것이 드러난 사단(仁義禮智)이야말로 지극히 순선하여 인간의 기질과 욕망이 섞여 있는 氣가 드러난 칠정(喜怒哀樂愛惡懼)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원론적인 생각을 독특하게 전개해 나갔다. 이는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기의 작용으로 보았던 율곡의 일원론적인 사상과 대립하면서 조선조의 심화된 성리학의 세계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주리론적인 퇴계의 저작과 학문의 세계는 도쿠가와 시대 이래로 일본 유학의 기몬학파(崎門學派)와 구마모토학파(熊本學派)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결국 일본의 주자학 이해는 퇴계를 통해서 그리고 퇴계의 학문영역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퇴계학파가 형성된 셈이다.
기대효과
  • 퇴계는 이론적인 탐구뿐만 아니라 늘 경건한 삶을 중심에 놓은 종교적, 윤리적 지성인이었다. 따라서 퇴계의 삶과 학문은 실천적인 삶과 괴리된 이론, 인간의 내면과 근원에 무관심한 지식으로 점철되는 근대 이후의 공부론에 새로운 자극을 부여하는 전통의 힘이 될 것이다. 퇴계라는 인물이 주는 상징은 한국의 일반 대중의 민속적인 삶에 어떤 활력을 주기보다는 병을 앓고 있는 한국교육의 현실과 엘리트의 삶과 문화에 어떤 쇄신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1970년대 이래로 동아시아는 물론 서구세계에서도 퇴계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국제학술대회가 개체되고, 퇴계의 삶과 학문이 세계의 석학들이 씨름하는 연구의 대상과 주제가 되었다는 점은 퇴계가 국제적으로 인문사회학적인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내외 곳곳에서 퇴계학연구소가 만들어지고, 퇴계학연구회가 결성되고, 퇴계학술대회가 개최되고, 퇴계학 관련 학술잡지가 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퇴계는 학문세계와 지식인들에게 국제적인 호소력을 갖고 있다. 다만,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 일반 대중에게 퇴계의 교육관과 공부론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도록 직접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나 학원현장에서 퇴계의 상징이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금장태,『성학십도와 퇴계철학의 구조』,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이상은,『퇴계의 생애와 학문』, 예문서원, 1999. <최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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