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평양
선정취지 및 필요성
  • 단군이 처음 나라를 열었다는 전하는 고도(古都)이며, 고구려 및 북한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 역사적 연원이 오래된 만큼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어 문화상징으로 선정될 필요가 있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양은 BC 2333년 단군이 도읍을 정했다는 설과 함께 고조선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단군조선에 이어 BC 813년 기자조선을 거쳐 BC 194년 위만조선의 수도로 계속 이어졌다. BC 108년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낙랑군에 속했으나 313년 낙랑군이 멸망하고 427년부터 240년간 고구려의 도읍지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唐)의 안동도호부에 속했다가 676년 통일신라의 변방으로 수복되었으나 918년 고려 건국과 함께 대도호부가 설치되었으며, 926년 서경이라 불렸다. 995년 서경유수를 두었으며 998년 호경(鎬京)이라 했다가 1062년 다시 서경유수로 고치고 경기사도(京畿四道)를 두었다. 1135년의 묘청의 난, 1269년의 최탄의 난 등을 거쳐 1279년 원(元)의 지배하에 들어가 동녕부를 설치했으나 1290년 다시 회복되었다. 1369년에는 만호부를 두었다가 후에 평양부로 개칭했다.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1413년 조선 태종 때에 전국을 8도로 분계 할 때 평안도 평양부가 되고 평안감찰사가 평양부윤을 겸임했다. 1896년 전국을 다시 13도로 나눌 때 평안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으며, 1927년부터 8·15해방이 될 때까지 대동군 일부를 편입해 부역(府域)을 확장했다. 1946년 특별시로 승격되었다. 평양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기에 유물·유적이 많다. 고분으로 대성구역의 고구려고분, 역포구역 무진리의 동명왕릉 등이 있으며, 성터 및 절터로는 낙랑구역의 낙랑리토성, 대성구역의 대성산성, 안학궁터, 청암리토성, 평양성, 외성, 내성, 북성, 영명사터 등이 있다. 누정으로는 연광정, 숭령전, 최승대, 을밀대, 현무문, 부벽루, 청류정 등이 남아 있다. 특히 대동문·보통문은 국보급으로, 평양종, 숭인전, 오순정, 칠성문, 홍복사 6각7층 석탑, 영명사 8각 석불, 중흥사당간지주는 보물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대동강 주변에는 모란봉, 을밀대, 만경봉 등의 명승지와 능라도, 양각도 같은 섬들이 있어 예로부터 풍치가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평양관광권을 이루고 있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기대효과
  • 남쪽에서 평양을 문화상징을 지정함은 그 자체 통일지향적인 효과가 있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통일에 대비하는 문화콘텐츠가 개발되어야 하겠다. 아울러 평양일대에 남아있는 우리 선조의 문화유산은 교육 분야에도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찬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유홍준,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상)』, 중앙M&B, 1998 <임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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