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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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두리

궁중의 큰 행사에 말을 타고 가는 기행나인[奇行內人], 진찬(進饌)이나 진연(進宴) 등의 궁중잔치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정재(呈才)에 참여한 여령(女伶) 등이 입는 겉옷이다. 조선 전기에는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예복으로 입기도 했던 여성 포제(袍制) 중 하나였다. 시대가 흐르면서 착장자의 신분에 따라 용도가 변하고, 형태도 변했으나 옷 길이가 긴 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문헌에는 ‘蒙頭衣(몽두의)’ ‘蒙頭里(몽두리)’, ‘蒙道里(몽도리)’, ‘몽도리’ 등으로 기록된다. ‘장삼(長衫)’ ‘황초삼(黃綃衫)’ ‘금향협수(金香挾袖)’ 등과 같이 이칭(異稱)으로 쓰인 기록도 있는데, 이는 착장자의 역할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기행나인이 착장한 몽두리는 헌종과 경빈김씨의 가례를 기록한 『정미가례시일기』(1848)에서 볼 수 있다. 기행나인 4인의 겉옷으로 ‘홍몽도리 1쌍, ‘황몽도리 1쌍’이 있으며, 같은 행사를 기록한 『경빈가례등록(慶嬪嘉禮謄錄)』(1847)의 반차도에는 기행나인이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형태의 포를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어있다. 이와 유사한 모습은 숙종 이후의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반차도 중 기행나인에게서도 확인된다. 머리에는 립(笠)을 쓰고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형태의 홍색포와 황색포를 입은 모습이다. 동일한 기록에는 이들이 입은 겉옷을 ‘홍장삼(紅長衫)’ ‘황장삼(黃長衫)’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기행나인이 입은 몽두리는 장삼이라는 이칭으로도 불리운 포 형태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궁중의 여령들이 입은 몽두리는 기행나인의 몽두리와는 다른 형태로 확인된다. 궁중 잔치를 기록한 『진찬⋅진연 의궤』나 도병(圖屛) 등을 보면 여령들이 황색 포를 입고 있다. <복식도>에는 ‘황초삼(黃綃衫)’이라는 명칭의 황색 포가 그려져 있다. 형태는 길이가 길고 섶이 없고 앞 길이 맞닿아있으며 옆선이 트여있고 어깨 부분에 색동 장식이 있다. 관련 재료를 기록한 <악기풍물>에는 이를 ‘몽도리(蒙道里)’라 기록하였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1809)의 여령복식을 보면 착장 복식과 복식도의 형태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그림의 한계로 볼 수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에는 대한제국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령의 몽두리가 소장되어있다. 황색 도류불수문사 옷감으로 만든 것으로 깃은 둥그레 형태이고 앞 길이 맞닿아있으며 어깨와 가슴 부분에는 화려한 채단으로 만든 보(補)를 달아 장식한 형태이다. 몽두리를 입고 손에 끼우던 유소가 달린 색동 한삼과 대대가 함께 전해지고 있어 여령의 복식이 실증적으로 확인된다. 이외에 조선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의 무녀(巫女)용 몽두리 유물은 세부적인 형태는 달라도 소매가 좁고 앞길을 맞닿는 대금형 황색 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박성실(2005), 「조선시대 蒙頭衣에 관한 연구」, 『服飾』 Vol. No.8, 한국복식학회.
박성실(2005), 「朝鮮後期 『進爵儀軌』ㆍ『進饌儀軌』類의 服飾 硏究」,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2, 』,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민속원.
劉頌玉 (1991), 『朝鮮王朝 宮中儀軌服飾』, 修學社.
국립문화재연구소(2013),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 문화재』.
 

 

[집필자 : 이명은(李明恩),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키워드 : 몽두리, 蒙道里, Woman's ceremonial robe / Dancer's r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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