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사전

가리마

조선시대 여성들의 머리쓰개로, 이마에서부터 머리를 덮어 뒤로 드리워 착용하는 납작한 책갑 형태이다. 17세기 전기까지는 반가 부인들도 사용하던 머리쓰개였으나 17세기 이후, 의녀(醫女)나 기녀(妓女), 침선비(針線婢)와 같은 낮은 신분의 여성들이 사용하는 관모가 되었다. 가리마는 후대로 갈수록 형태가 커지고 착장 방법도 변화되었는데, 16세기 후기의 <기영회도(耆英會圖)>의 기녀와 18세기 후기 신윤복(申潤福)의 <청금상련(聽琴賞蓮)>의 기녀가 가리마를 착장한 모습에서 크기 변화가 확인된다.
1500년대 반가 여인이 착장한 가리마 유물로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파평윤씨(坡平尹氏, 1566), 수원박물관 소장 여흥이씨(驪興李氏, 16세기 후반) 묘에서 출토된 가리마가 있다. 특히 여흥이씨는 가리마로 머리를 덮은 후 두 갈래 땋은 머리를 가리마 위로 돌려 착장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아청색 연화문단(蓮花紋緞) 옷감에 종이심을 배접하여 만든 후 길이를 반 접어 만든 직사각 형태이며, 크기는 가로 27㎝, 세로 36㎝로 조선 후기의 가리마 보다 다소 작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임하필기林下筆記』(1871)에는 검은색이나 자주색 비단의 전폭(全幅) 2자 2치를 반으로 접어서 두 겹으로 하고 그 사이에 두꺼운 종이를 넣어 납작하게 만든 형태로서 그 길이가 어깨와 등에까지 덮을 정도라 하였다. 또한 가리마를 착장할 때는 좌우에 달린 끈을 돌려 머리 뒷부분에 고정시키고 끝에 달린 차[釵]를 머리에 꽂아 고정하였다. 1500년대와 비교하여 크기가 커지고 머리 대신 끈으로 고정하여 크기와 착장 방법에 변화를 보였다.


참고문헌
이은주(2001), 「17세기 전기 현풍 곽씨 집안의 의생활에 대한 소고」, 『服飾』 51권 8호.
최지희(2002), 「耆英會圖에 나타난 16세기 조선시대 복식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박성실(2005), 「朝鮮後期 『進爵儀軌』ㆍ『進饌儀軌』類의 服飾 硏究」,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2, 』,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민속원.
정고은(2013), 「조선시대 여자 가리마의 실증적 고찰」, 부산대학교 대학원 복식문화재보존학석사학위논문.
 
 
 
 
 

두수 도설 (왕비의 수의 품목 중에서 머리쓰개로 사용된 두수)
『국조상례보편』(1758) 도설(圖說), 습(襲)
[집필자 : 이명은(李明恩),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키워드 : 가리마, 加里亇, Woman’s squared he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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