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소례복 흑단령, 小禮服 黑團領, Heukdalryeong, Official’s black robe

· 시대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신분 : 관리 / 남자

· 출처 : 흑단령 대례복 ( 숙명여대박물관 소장 )/우정국 직원(1902 년) ( 『Korea-Caught in Time』 p.85 )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표제어, 연관어 정보를 제공하는 표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표제어 연관어
관복 소례복 흑단령 쓰개 사모
겉옷 단령 흉배 없는 착수 흑단령
품대 속대
버선 버선
신발 흑혜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새로운 외교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복식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1884년 갑신의제개혁에서는, 공복(公服)을 착수(窄袖)의 흑단령(黑團領)으로, 사복(私服)을 착수의(窄袖衣)로 정하였다. 1894년의 갑오의제개혁에서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대례복(大禮服)과 통상예복(通常禮服)을 정하였다. 대례복은 흑단령으로 하였고, 진궁시 통상예복은 주의, 답호에 사모, 화자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통상예복은 소례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다. 이 규정은 다음 해인 1895년 을미의제개혁에서 대례복, 소례복, 통상복색으로 재정비되었다. 대례복은 왕을 수행하여 동가할 때, 경절과 문안, 예를 갖추어 인사할 때 흑단령, 사모, 품대, 화자로 착용하도록 하고, 소례복은 대례복을 대신하거나 무시로 진견할 때 흑반령착수포, 사모, 속대, 화자로 착용하도록 하였다. 먼저, 1894년 갑오년의 통상예복은 웃옷이 주의, 답호였던 것에 비해 1895년 을미년의 소례복은 착수의 흑반령으로 정해졌다. 대례복과 소례복의 웃옷으로, 단령과 반령은 목둘레가 둥근 옷을 가리키는데 남아 있는 유물에서 그 차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소매가 넓은 단령을 대례복, 소매가 좁은 단령을 소례복으로 정하고, 대례복에는 품대를, 소례복에는 속대를 착용하여 차이를 둔 것이었다.
1898년에는 외국에 파견된 외교관의 복장 규정에서 대례복은 유양흑반령착수포, 사모, 품속대, 화자, 소례복은 무양흑반령착수포, 사모, 품속대, 화자로 정했다. 이 때 양(揚)은 흉배를 의미하였다. 1899년에는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 조근, 참반, 배종할 때 소례복에 품대를 더하여 대례복으로 착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상을 정리하면, 흑반령착수포에 흉배를 달지 않을 경우, 품대가 아닌 속대를 착용할 경우를 최종적인 소례복으로 정한 것이다. 이는 1900년 4월에 서구식의 문관 복장 규칙을 정할 때까지의 소례복 규정이었고, 이후에도 소례복인 연미복과 공존하면서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사진 중 1902년에 촬영한 우정국 직원들의 사진[그림11-4-1]을 보면 머리에 사모를 쓰고 웃옷으로 흉배가 없는 착수의 흑단령, 허리에는 속대를 띠고, 발에는 버선에 혜를 신어 소례복 일습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구한국)官報』

고려대학교박물관 편(1990), 『복식류명품도록』.

이경미(2014), 「개항기 전통식 소례복 연구」, 『服飾』 64(4), 한국복식학회.

박가영(2014), 「조선 후기 전복(戰服)의 용도와 착용 방식」, 『韓國服飾』 3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집필자 : 이경미(李京美), 한경대학교]
  • 장영직 유품 사모 (근대)
    장영직 유품 사모 (근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흑단령 소례복
    흑단령 소례복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흉배 (조선시대)
    흉배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연관이미지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빠른 이동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