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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쇠에 녹여내는 뜨거운 장인정신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粧刀匠) 박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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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쇠에 녹여내는 뜨거운 장인정신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粧刀匠) 박종군

차가운 쇠에 녹여내는 뜨거운 장인정신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粧刀匠) 박종군

장도란 칼집이 있으며 몸에 지닐 수 있는 작은 칼을 이른다. 호신용이나 장식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전통공예품이지만, 장도가 지닌 의미,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 이상이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도장의 길을 걸어온 박종군 장인은 아내와 아들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잇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 속 선인들이 지녔던 ‘장도 정신’을 현대에 전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박종군 장도장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도장(粧刀匠) 박종군
interview

박종군 장도장을 만난 전남 광양에 위치한 장도전수관은 그의 피땀과 애정이 서린 장소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장도장의 길을 계승하기 위해 젊은 나이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온 박종군 장인은 장도의 기술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숭고한 정신을 전수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남다르다. 장도의 진가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그날을 위해 그는 오늘도 뜨거운 열정을 달구고 있다.

부친이신 박용기 장인의 뜻을 이어
장도장의 길을 걷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1세대 장인들이 처한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기술의 보존과 자신의 생존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저 역시 거기에 모든 걸 걸었습니다. 제 부친이신 박용기 장인은 열네 살 때 패도(佩刀, 몸에 차는 칼) 장인 故장익성 옹에게서 일을 배우셨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워낙 힘들어서 5명의 도제 중 저희 아버지 혼자만 남은 데다가 당시 장익성 옹 역시 너무 고령이어서 곧 세상을 떠나셨죠. 사실 부친께서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장도뿐만 아니라 모든 전통공예의 맥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무형문화재 1세대 장인들의 스승, 그 윗대 스승의 계보를 알 수 없는 상태였어요. 일제 강점기의 문화 말살정책 탓도 있지만 장인이라는 직업을 천시하던 시대였기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박종군 장도장이 만든 광양장도에는 일편심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새겨져 있다 ⓒ디자인밈 박종군 장도장이 만든 광양장도에는 일편심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새겨져 있다 ⓒ디자인밈
작업장이자 전시관인 이곳 ‘장도전수관’을
전 재산을 털어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장도전수관이 세워진 이곳은 바로 저의 집터입니다. 2006년에 건립하기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정부도 문화의 중요성을 점점 알아가게 되자, 이 때다 싶었죠. 정부출연금 외에도 동산, 부동산 모두 포함한 사재를 털었습니다. 여기에 지자체 예산도 투입돼 결국 이 전수관을 짓게 된 거죠. 사실 이러한 공간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거기에 전시사업까지 진행하려면 더 많은 예산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고요. 하지만 비용이 든다고 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문화생활과 교육을 위해 지어진 시설을 놀릴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유지비를 위해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어요. 장도전수관은 작품을 팔아서 유지하는 상업 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관장인 제가 직접 여러 국가 지원 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영화를 비롯해서 인기 높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광양장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다만 장도가 그 상징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닌, 소품 식의 협업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2006년 건립된 장도전수관1 ⓒ디자인밈
2006년 건립된 장도전수관2 ⓒ디자인밈 2006년 건립된 장도전수관 ⓒ디자인밈
장인으로서 해야 하는 작업 외에도
‘장도’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남다르실 텐데요.
장도를 만들 쇠를 벼리는 모습 ⓒ디자인밈 장도를 만들 쇠를 벼리는 모습 ⓒ디자인밈

무형문화재는 국가로부터 명받은 책임입니다. 작업도 중요하지만 전수교육이든,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교육에 대한 사명을 잊어선 안 됩니다. 장인은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재 기능을 통해 국가에 봉사하며 사익을 챙기지 않는 삶 말이죠. 사극을 통해 장도는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고려 이레 남녀, 신분을 막론하고 각자의 위치를 상징하는 장도 하나씩은 갖고 있었죠. 그 정신은 충, 효, 의리 등 숭고한 가치 즉 광양장도에 새겨진 ‘일편심’입니다. 광양장도가 유명하게 된 것은 좋은 철의 산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양 온 신하들이 직접 그 철로 장도를 만들며 충심을 다진 데서도 유래를 찾을 수 있죠.

아내 정윤숙 씨와 아들 박남중 씨까지 대를 이어
장도장의 길을 함께 걷고 계신데요.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92년부터 수련을 쌓아서 어느덧 명장 반열에 올랐어요. 저희 부부의 모습이 동기가 되었는지 20대인 아들도 이수자로 체계적인 수련을 쌓았습니다. 사실 무형문화재를 특별한 명예나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관문화훈장, 그리고 제가 제60호 장도장 증서를 받을 때는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때 해야 할 효를 다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죠. 특히 은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분양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공을 인정해주는 의미가 담겨있어서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아직은 50대인 제가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정부 지원 사업으로 파리에 갔을 때 광양장도가 크게 주목받았는데요. 그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장도문화와 비슷한 칼 문화가 있더군요. 그들이 저의 칼을 알아본다는 것이 기뻤죠. 기회가 된다면 다시금 유럽에서 광양장도의 진가로 ‘진검승부’를 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