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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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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入絲)란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金線)이나 은선(銀線)을 끼워 넣어 장식하는 상감기법을 말한다. 입사는 우리나라 금속공예 중에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통공예기법이다. 금속 표면에 금실이나 은실을 박아 무늬를 장식하는 기예로써 금속공예의 정화(精華)로 일컬어 오고 있다. 이러한 입사는 금속표면에 홈을 파거나 쪼아서 금속선이나 금속판을 그 위에 박음으로 두 금속을 땜없이 붙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금속물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 기법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술로, 각 나라마다 고유한 이름으로 불려졌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기법을 입사라고 불렀으며 주로 은실을 박아 장식한 데서 연유하여 은실박이, 은입사라고 부르고 있다. 입사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금속 표면에 가는 홈을 파고 그 안에 은선을 박아 넣는 오래된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금속 바탕 위에 얇은 금판, 은판이나 선을 올려 놓고 망치로 세게 쳐서 붙이는 방법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제작기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금속 표면에 빗살무늬, 아(亞)자 무늬 등 기하학 무늬는 물론 사군자와 같은 회화적 문양을 새기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 금속유물에서 보이는 이 기법을 흔히 입사 대신 상감이란 용어로 많이 사용해 왔다. 상감(象嵌)은 어떤 용기의 표면에 홈을 파고 색감이나 질감이 다른 재료를 그 안에 끼워 넣어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금속에만 적용되어 말할 수 있는 입사와는 달리 상감은 재료에 상관없이 쓰일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장식 기술 용어이다. 유물 중에는 신라 유물 중 6세기 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금에 마노를 박아 장식한 장식보검(보물 635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에서 상감기법의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입사의 기원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입사유물은 백제, 가야, 신라를 중심으로 20여점 정도인데 대부분이 고리자루칼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지 가장 오래된 입사유물로는 현재 일본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칠지도이며, 국내에서 출토된 가장 빠른 시기의 유물은 충남 천안 화성리에서 출토된 4세기 후반 백제의 철제은입사고리자루칼이다. 이러한 칼들은 백제에서는 4~5세기에, 가야에서는 5~6세기, 신라에서는 6세기에 주로 나타나며,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입사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불교 공예품을 통하여 찬란히 꽃피우게 되었다. 향완, 정병, 합과 같은 불교용품을 중심으로 하였던 고려의 입사공예품은 유교가 지배하였던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일상생활의 기물들로 바뀌었으며 그 사용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고 품목도 다양해진다. 조선중기 이후 한반도에는 종전의 입사방법과는 다른 입사방법이 나타나며 전대의 입사전통을 잇게 되는데 이전의 청동에 장식하던 입사물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대신 철제에 은입사 되는 기물들로 대체되었다. 바탕금속의 재질이 청동에서 철로 바뀌어짐에 따라 무늬를 새겨 넣는 기술은 물론, 무늬의 표현방법, 내용 등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고려시대가 입사기술의 절정기였다면 조선시대는 입사공예가 생활 속에 자리잡은 가장 보편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에서 경공장으로써 입사장을 두어 전통적으로 그 기교를 계승함과 동시에 국가나 궁중에서 필요한 작품을 충당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