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흥수 (興首)
생몰년대 미상. 백제 의자왕 때의 충신

 좌평(佐平)으로 있다가 죄를 지어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 : 현 전남 장흥)으로 귀양 갔다. 660년 의자왕은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함으로 좌평 의직(義直)과, 달솔(達率), 상영(常永) 등의 신하를 모아 나당군의 침공에 대비하는 회의를 열었는데 의논이 구구하여 결정을 짓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자 의자왕은 흥수에게 사람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 흥수는 「당(唐) 병은 수가 많고 군율이 엄하고 더구나 신라와 공모하여 앞뒤로 서로 호응하는 세를 이루고 있으니 만일 넓은 들판에서 싸우면 승패를 알 수가 없다.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은 우리나라의 요새지인바 일부(一夫) 단창을 만인도 당할 수 없을 것이니 마땅히 용사를 가려 보내어 지키게 하여 당나라 군대는 백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라인으로 하여금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대왕께서는 굳게 성문을 달아 지키고 있다가 적군의 양식이 떨어지고 또한 사졸(士卒)들이 지칠 때를 기다려 이를 치게 한다면 반드시 적병을 깨뜨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신들은 이를 믿지 않고 말하기를 「흥수는 오랫동안 귀양 가 있어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니 그 말을 들어줄 수 없다. 당병으로 하여금 백강에 들어와서 흐름에 따라 배를 정렬할 수 없게 하고, 신라군은 탄현에 올라서 소로(小路)를 따라 말을 정렬할 수 없게 한 다음 이때를 포착하여 군사를 놓아 치면 마치 조롱 속에 있는 닭을 죽이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왕이 그럴싸하게 여겼다. 이때에 당군이 이미 백강을 지나서 진격해오고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공격해 온다는 말을 듣자 왕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이리하여 계백이 거느린 5000명의 결사대는 황산별에서 패하고 백강에서도 패하여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文獻] 三國史記 等

[영정개요]
·표준영정 지정년도: 1994
·제작 작가: 오태학
·영정크기: 120 X 161(가로X세로cm표시)
·소장지 및 소장인: 삼충사(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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