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김유신 (金庾信)
595(진평왕 17)~673(문무왕13), 삼국통일을 이룩한 장군

 본관 김해(金海).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代孫)으로, 화랑이 되어 화랑정신을 기르고, 611년 삼국통일을 기원(祈願)하고 무술을 닦은 뒤 국선(國仙)이 되었다. 644년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등 7개의 성을 쳐 이기고 이듬해 1월에 개선하였다.


 그런데 왕을 알현하기도 전에 매리포성(買利浦城 ; 居昌)이 백제군의 맹공을 받고 있다는 파발에 곧장 상주(尙州) 장군이 되어 출전, 요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647년(진적여왕 1) 여왕을 폐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란을 토벌하였고, 무산(茂山 ; 무주군) 등 3개 성을 공격해 온 백제군을 보병, 기병 1만으로써 크게 격파하였다. 이찬 벼슬로 승진되어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이 되었다. 649년 석토성(石吐城)을 공격해 온 백제의 장군 좌평(佐平) 은상(般相)을 무찔렸다. 654년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재상으로 있던 이찬 알천(閼川)과 의논하여 이찬 김춘추(金春秩; 太宗武烈王)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듬해 백제의 도비천성(刀比川城; 永同那)을 공략하였으며, 이 때 백제왕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백제를 멸할 것을 왕에게 건의하였다.


 660년(무열왕 7) 상대등(上大等)에 올랐고, 신라 정예군 5만과 소정방(蘇定方)이 이끈 당군 13만이 연합하여 사비성을 함락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문무왕 1) 나당 연합으로 옹산성(瓮山城; 대덕군)의 백제 잔적(殘賊)을 토벌하고, 663년 백제의 부흥군(復與軍)을 두솔성(豆率城; 周留城)에서 대파하였고, 665년 당나라 고종으로부터 봉상정경, 평양군개국공(奉常正卿平壞郡開國公)에 보해졌다. 이듬해 나당연합군으로 평양을 칠 때 연합군 대총관이 되었으나 왕명으로 금성에 남아 국방을 도맡았다.


 고구려 정벌 직후 태대각간(太大角干; 太大舒發翰)의 최고직에 오른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673년(문무왕 13)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흥무대왕(興武太王)에 추존되고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되었다.


[文獻] 三國史記, 三國遺事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7
- 제작작가 : 월전 장우성
- 영정크기 : 세로187cm X 가로98cm
- 소 장 지 : 진천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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