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상징

백자
선정취지 및 필요성
  • 마치 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달항아리로 지칭되는 백자이다. 조선의 대표적 자기가 백자라면, 백자의 으뜸은 역시 달항아리다. 한국도자사의 명품이자, 세계도자사의 명품으로 한국의 문화상징 반열에 오를만한 미학적 가치가 높은 물건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달항아리가 정확히 언제부터 출현하였는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백자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도자기들이 그러하듯이 그냥 모셔놓고 감상하는 감상용이 아니라 그 안에 내용물을 담는 생활용구로서 제작된 것이니, 달항아리 역시 백자가 널리 제작되는 시점에서 비교적 큰 그릇으로 제 목적을 지닌 채 탄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란 것은 어느 한 순간에 가장 정점에 이르기 마련이니 보다 후대에 최고의 달항아리가 완성되었음직하다. 가령 경기도 광주군에 위치한 관요(官窯)인 금사리가마에서 18세기 초에 탄생한 달항아리는 매우 잘 알려진 명품으로 우리 문화재의 해외전시품목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달항아리들은 대개 명품으로 인정되며 조선도공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웅변해주는 물건이다. 대개 일반서민용이 아니라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 전유물로서, 이를 만든 도공은 우리 도자기 대개가 그러하듯 성도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 항아리를 쓰는 이들이 일그러짐을 지적하고 완전한 형태로 만들 것을 명했더라면 이렇게 맵시 있는 일그러짐을 간직한 채 전해지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도공은 마치 달을 빚듯이 크고도 우람하게, 그러면서도 안정감 있게 항아리를 빚었다. 사실 이 같은 항아리전통은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옹기항아리의 전통과 무관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쓰이던 그릇에서 보편적이고도 생활적인 예술품이 비롯되었음직하다. 이처럼 당시대에 빚어진 한 조형예술에 담겨진 미감은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어 민족 전체가 추구한 미의식을 솔직하게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니 달항아리는 한민족이 빚어낸 뛰어난 미적세계를 품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백자전통은 이웃 중국에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토록 담백하고 여유 있으면서 훤칠하고 우람한 달처럼 생긴 항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양을 복잡하게 그려 넣은 중국도자기에 반하여 지극히 여유 있는 비어있음의 미학은 한국적인 세계관의 일단이다.
기대효과
  • 그냥 백자로만 알려진 조선시대의 백자문화에서 최고의 명품을 가려내고 달항아리를 하나의 상징적 매개물 삼아 백자문화의 세계적 우수성을 드러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달항아리의 형태를 선호하기 때문인지 오늘날에도 달항아리는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으로 차가운 흰색에 윤택이 너무 강하고 매끄럽다. 어지간히 모습은 유사하나, 색조에 따뜻한 체온이 감지되는 우윳빛 흰색인 선조들 것과는 달리 창백하기 만하다. 조선시대의 달항아리는 겸손과 온유함을 담은 우리민족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의 표상이었을진대, 이미 우리의 심성이 이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뜻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달항아리의 문화산업적인 생산 측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정신과 맥을 잇는 방식으로 재현되어야할 것이다. 예술 교육적 측면에서 달항아리가 내포하는 자연스러움과 유장한 느낌, 안으로 가라앉은 빛깔과 조용하고 침착한 안정감, 여유와 풍요로움을 말해주는 부피감 등등 현대인들이 상실한 다수의 장점을 배워야할 것이다. 달항아리는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예술이 나아갈 하나의 밑바탕을 이루며, 예술교육은 물론이고 문화산업 자체의 문화콘텐츠로 다가오고 있다. 각박한 현대적인 삶 속에서 달항아리의 여유와 안정감은 보다 생명력 있는 예술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참고자료
  • 이원복,『나는 공부하러 박물관에 간다.』,효형,1997 <주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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