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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갓을 제작하는 공정은 크게 3가지 기능으로 구분한다. 갓대우 부분을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 대올을 실낱처럼 떠서 차양부분을 얽어내는 양태장,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해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입자장이 그것으로, 서로 분업을 거쳐서 비로소 갓이 만들어진다. 이 중 양태란 갓에 둥근 차양을 이루어 태양을 가리는 부분을 말한다. 보통 갓은 총모자를 말총으로 하고 양태는 죽사로 하는 것이 통념이나 옛날에는 양태와 총모자를 모두 죽사로 만들었다.


 갓은 본시부터 피죽(皮竹) 쪼개기를 실같이 한 대올을 가지고 결어서 죽태(竹胎)의 기본형을 잡아 놓고 그 위에 깁을 바르면서 구멍이 메워지지 않을 만큼만 옻칠을 입힌 것이다. 모자 부분을 갓대우라고 일컫고 차양부분을 양태라 구별해 부르는데 갓대우와 양태는 제작 재료가 아주 다르게 발달되어 왔다. 본시 댓개비로 만들어 깁을 발랐던 갓대우가 자칫 망가지기를 잘하므로 아예 유연성 있는 말총이나 쇠꼬리털로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태까지 말총으로 대용하기는 곤란하였다. 위풍 있게 폭넓은 양태를 말총으로 겯는다면 그 등판을 두둑하게 휘어잡을 수 없거니와 어느 한쪽이 축 쳐져 버려 단정치 못하게 된다. 그래서 양태는 대올을 극세화하는 기교에 한층 공력을 쏟아 왔다. 갓이 지니고 있는 풍채의 핵심은 양태의 느슨한 곡선에 있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양태를 넓혔다가 줄이는 유행을 되풀이해 왔다. 단원의 풍속화에 나오는 갓보다는 혜원이 그린 갓이 훨씬 풍채가 있다. 그것은 그들 화가가 가진 필선에 차이가 없는 게 아니지만 시대차에 의한 유행의 반영도 배제될 수 없는 이유이다. 19세기초의 [순조실록]에 의하면 양태의 치레가 도를 지나쳐서 막대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폐단을 지적한 기록도 보인다. 그래서 19세기말 대원군 집권 시에는 대립(大笠)의 양태를 훨씬 좁혀서 소립(小笠)으로 개량하는 한편 양반 계층만이 쓴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뜨려 1896년 단발령과 동시에 백정과 같은 천민까지 갓 쓰는 것을 허락하였다. 한편, 조선시대 양태를 제작하는 장인들은 여자 장인들이 많았으며, 이것은 조선말기 김준근의 풍속화 [냥태 틀고]에서도 확인이 된다.이 그림에 의하면 여자 양태장 2명이 국수가락처럼 가는 대실[竹絲]를 옆에 두고 양태판이와 판걸이 및 바늘 등 간단한 도구만으로 양태를 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양태장의 제작 도구는 현재까지도 거의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