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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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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매듭은 매 가닥을 엮고 맺는 섬세함을 보여주는 예술로서, 기계화로 인한 규격화, 대량화와는 극히 상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듭은 실을 염색하고 풀고 짜고, 엮으며 장인의 솜씨로 결실을 맺는 예술이며 끈목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고 죄는 수법, 또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형태를 말한다.


 매듭이나 끈목의 기원은 여러 유물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 황해도 안악 3호분의 초상에서 나타난 방장을 묶은 끈과 술, 고려시대 [고려도경]의 자료를 통해 각종 의식에서 사용하였던 물품에 대한 기록들이 그것이다. 특히 고려불화에 나타나는 관, 영락, 목걸이, 허리띠에 있는 술 장식을 통해 그 맥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양식은 조선시대 탱화로 이어졌으며, 그 밖에도 각종 번(幡), 가마장식에 쓰인 유소, 복식에 쓰였던 것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두었는데 [대전회통] 공정편을 보면 매듭을 맺는 장인을 매집장(每緝匠)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공조(工曹) 경공장(京工匠)에 매듭장 2명, 상의원에 4명, 총 6명을 두어 제작하였다. 또한, 술도 매듭과 마찬가지로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제관(諸官)과 각사(各司)에 장(匠)을 두어 제작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명주실을 꼬고 합사하고, 각색으로 염색해서 끈목을 만드는 다회장과 굵고 가느다란 끈목을 두 가닥으로 늘어 뜨려가며 각종 모양으로 매듭을 맺는 매듭장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매듭장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1950년 경)만 해도 서울 광희동하면 누구나 끈목과 매듭을 연상할 정도로 매듭장, 다회장들이 모여 살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했고 현재는 그조차도 당시의 기억으로만 가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