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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대를 이용하여 만든 제품은 매우 다양하다. 통대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쪼갠 대를 이용하기도 하며, 죽순껍질이나 뿌리로 만들기도 하고, 대오리를 만들어 짜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채상, 삿갓, 반짇고리, 바디, 세렴(細簾) 등과 같이 대를 재료로 하여 정교하게 가공한 제품을 죽세공예품이라고 한다.죽세공예품 중에서 가장 정교한 세공을 요하는 것이 채상이다. 채상은 대를 가늘게 오린 대오리에 색색의 물을 들여 세올뜨기로 여러 가지 무늬를 수놓 듯 만든 고리의 일종으로 우리나라 죽세공예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채상장(彩箱匠)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들여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언제부터 채상장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채상은 고대 이래로 궁중과 귀족계층의 여성이 즐겨 사용하던 공예품의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사대부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의 하나로 유행하였으며 주로 옷, 장신구, 침선구를 담아두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채상에 관련된 최초의 문헌기록은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에서 볼 수 있다. 순조 9년(1809)에 저술된 이 책에는 팔도의 명품을 적고 있는데 담양의 소산(所産)으로 죽순 및 세대삿갓과 함께 채죽상자(彩竹箱子)가 유명하다고 적고 있다. 이외에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발견된다. 임금님이 승하했을 때 봉물(封物)을 담아 보내는 데에 채상을 사용하였고, 좋은 채상을 진상한 대가로 나라에서 참봉, 봉사 등의 벼슬까지 내렸다는 이야기는 채상의 고급스러운 가치를 말해준다. 통풍이 잘되고 습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 오래 담아 두어도 냄새가 배이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민간에서도 대개 폐백이나 혼수 등 귀한 물건을 담는 용도로 사용해 왔다.


 채상은 1970년대 중반부터 플라스틱 제품이 범람하면서 다른 죽제품과 더불어 수요가 줄어들었다. 1930년대 10여호가 채상일에 종사하였는데 1975년 이후로는 단 1호만이 작업을 계승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이 단절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에서는 채상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김동련 선생을 초대 기능보유자로 인정하게 되었다. 뒤를 이어 1987년 서한규 선생이 그 맥을 이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채상은 죽세공예의 정수로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제품이다. 그래서 죽세공에 정통하고 많은 경험이 축적된 후에야 제작이 가능하다. 대나무에 염색을 하여 상자를 짜는 채상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공예기술이기에 경쟁력을 가진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