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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유기장은 놋쇠로 각종 기물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시기는 인류 역사에 있어 최초로 합금술이 발명된 때이다. 신라시대에는 유기를 만드는 국가 전문기관인 “철유전(鐵鍮典)”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더욱 발달하여 얇고 광택이 아름다운 유기를 만들었으며, 품질도 우수해 신라동(新羅銅), 고려동(高麗銅)이라 불리며 수출하였다. 유기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 등으로 나뉘는데 가장 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방짜유기는 일명 양반쇠라고도 하며 북한의 납청유기가 가장 유명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질이 좋은 놋쇠는 전통적인 유기제작 방법인 방짜(方字)기법으로 제작했는데, 이는 동(銅)과 석(錫)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하여 두드려서 만드는 놋제품이다. 이 방짜유기는 금속조직을 늘여서 만드는 것이라 떨어뜨려도 찌그러질 뿐 깨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매우 선호했다. 그러나 조선조 중엽에 이르러 수요가 늘어나자 손으로 두드려서 만드는 방짜기법 대신 손쉬운 주물기법으로도 제작하게 되었다. 주물유기는 방짜유기의 합금과는 달리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황동이나 기타 잡금속을 섞어 녹인 금속을 주형에 부어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다. 정확한 합금비율로 만든 전통적인 방짜유기와 주물유기는 성분이 다소 다르지만 잡주물로 만든 유기까지를 포함해서 넓은 의미로 유기라고 알려져 왔다. 이렇게 잡금속을 섞어서 대량생산하던 합금쇠를 통쇠라고 했으며, 전통적인 놋쇠와는 엄격히 구분지어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퉁쇠는 주물한 것이라 금속의 단면이 유연성이 적어 그릇을 떨어뜨리면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해방 이전만 해도 방짜기법으로 만든 유기를 최고로 여겼으며, 특히 상질의 놋그릇으로 유명한 납청에서는 방짜유기점은 놋점, 주물유기점은 퉁점이라고 구분해서 불렀으며 놋쇠로 만든 그릇은 놋성기, 퉁쇠로 만든 그릇은 퉁성기라고 구분해서 불렀다. 방짜유기는 녹인 쇳물로 바둑알 같이 둥근 쇳덩어리를 만든 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망치로 쳐서 형태로 만드는데 주로 징이나 꽹과리, 식기, 놋대야 등을 만들 때 사용된다.


 한편, 방짜 유기 제작으로 유명한 평북 납청은 조선시대부터 유기 제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납청은 정주읍과 박천읍 사이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내공업으로 유기업을 하여 생활했던 곳이다. 이 지방은 일찍이 유기제작이 크게 발전하여 각 지방에서 유기 도매상들이 모여들었으며, 일제초기까지만 해도 성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납청에서는 방짜를 양대(良大)라고 불렀으며, 모든 생활기명이나 악기를 만들어 내었는데, 놋쇠의 질이 좋아 견고하고 소리도 맑고 파장이 길어 각광을 받았다. 이렇듯 납청에서 유기가 성행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유기공장에서 사용하는 화력 좋은 소나무 숯이 가장 많이 생산된 것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당시 납청의 유기는 평안도에서는 물론 황해도, 함경도까지 그 판로가 형성되어 수요가 매우 많았다.


 유기전통은 근대 말에 이르러 일본에 의한 유기공출이라는 이름 아래 집집마다 거의 모든 유기를 전쟁물자로 차출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해방 이후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다 1950년대 이후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 연탄가스에 변색되기 쉬운 놋쇠의 성질 때문에 사용하기가 불편해졌을 뿐 아니라 스테인리스 그릇에 밀려 점차 유기공장들이 사라져 갔다.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선생에 의해 방짜유기의 기술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예부터 음식을 담는 반상기로 쓰인 방짜유기는 독성이 없고, 항균, 멸균 효과가 뛰어나며 농약 성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방짜기술을 가진 나라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더구나 그릇을 방짜기술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