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메뉴 열기, 닫기

전통문화공감

검색어 입력
  • Print

본문시작

장인

 바디는 베를 짜는 베틀에 사용되는 직조기구 중의 하나로 베틀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다. 베틀 중에서 바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바딧살의 촘촘하기에 따라 모시베, 삼베, 무명베, 명주베 등의 가늘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베틀에 걸린 바디에는 짜야 할 날실을 꿰며, 날실의 숫자는 베올의 굵기에 따라 달라져 보름새 이상의 경우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천여 올 이상의 날실을 바디에 꿰야 한다. 따라서 얼마나 가는 실로 짜느냐에 따라 피륙의 샛수가 나뉘듯이, 바디 또한 바디 안에 몇 개의 날실을 넣을지에 따라 바딧살의 숫자가 달라지고 바디의 종류도 나뉜다. 옛날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베틀에서 베를 짜서 식구들의 옷감을 짜는 것을 생활의 낙으로 삼았고, 이러한 민속은 베틀노래에 담겨 현재까지 전해진다. 씨실, 날실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의생활 중에서 직조는 중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베틀이나 기타 직조기구를 만드는 부분인 바디를 매우 중요시했다.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시하여 국왕의 시책에 있어서도 백성을 다스리는데 중요한 정책으로 여겨 왔다. 조선시대에는 바디 만드는 사람을 성장(筬匠)이라 하였다. [경국대전] 공장조(工匠條)에도 상의원(尙衣院)에 성장이 10여 명이나 있었고, 또 지방 내자사(內資寺) 제용감(濟用監) 등에도 성장, 즉 바다 만드는 장이 고정 배치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엽부터 직조업이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실학사상의 발전으로 기계화의 출현과 섬유화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옷감이 발달하여 무명이나 삼의 재배가 성행하지 못하고 차츰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6.25 이후에는 나일론이 성행하여 목화나 삼의 재배가 거의 없어지고 기계방직기의 발달로 재래 직조기구인 베틀도 없어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산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1988년 국가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장을 지정하였고 보유자로 구진갑 선생을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