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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지남반(指南盤), 지남철(指南鐵) 혹은 패철(佩鐵) 등으로 불리는 윤도(輪圖)는 지남성(指南性)이 있는 바늘, 즉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들이 음택과 양택 등 풍수지리를 보거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기 위해 사용하던 일종의 나침반을 말한다. 지남침의 원리는 중구 한대(漢代)에 이미 실용화되어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윤도가 쓰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삼국시대에 윤도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천문학이 발달했던 것으로 보아 윤도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박사(博士)제도 중에 천문 박사가 있었고, 백제에서는 천문학을 담당하던 일관부(日官部)를 두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를 보아도 당시에 음양오행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역법(曆法)과 주역(周易)이 수입되어 신라에서는 박사와 조교를 두고 주역을 가르쳤다. 이렇게 주역과 천문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시기에 이미 윤도가 쓰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통일 신라 말에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풍수도참 사상이 발달하면서, 윤도는 지상(地相)을 보는데 중요한 기구가 되었고 이는 고려시대까지 널리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가 되면 이전 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윤도(輪圖)’라는 명칭이 실록에 보인다. 선조 33년(1600년)에는 명나라에서 온 지리에 밝은 이문통(李文通)이 나경(羅經)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윤도처럼 생겼다고 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윤도가 쓰이고 있었고, 중국에서는 나경이라는 명칭으로 윤도와 같은 것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조 7년(1731년)에 허원(許遠)이라는 사람이 새로 지남철을 만들었는데, 해의 그림자를 취하여 남북을 정하니 그 법이 아주 정밀했다. 또한 영조 18년(1742년)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중국에서 구해 온 천문도(天文圖)와 5층 윤도는 모두 천문, 지리의 쓰임에 요긴한 것이므로 본떠 만들기를 청해 허락했다. 관상감에서 윤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윤도에 별자리로 점을 치는 점성술의 요소와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절후 등이 있는 것과 일치한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 주목할 만한 사실은 풍수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윤도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뱃사람이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는데 이용하기도 하고, 천문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의 휴대용 해시계에 정확한 남북[子午]을 정하는데도 윤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휴대용 해시계에는 간단한 윤도를 함께 붙이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사대부들은 부채의 끝에 작고 단순한 모양의 2, 3층짜리 윤도를 만들어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부채에 매단 선추(扇錘)는 12방위 또는 24방위만을 표시한 소형 지남침으로 가장 실용적인 멋을 가졌으며, 그 아름다운 조각과 더불어 조선의 독특한 휴대용 나침반으로 발달하였다.


 이렇듯 윤도는 묘자리를 보는 지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이던 생활 과학 도구였다. 그러나 해방이 된 후 서구의 문물의 영향으로 윤도와 관련된 학문들이 미신으로 격하되어 쇠락하면서 윤도 역시 잊혀지게 되었다. 지금은 몇몇 지관들과 가보(家寶)로 소장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