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메뉴 열기, 닫기

전통문화공감

검색어 입력
  • Print

본문시작

장인

금속공예품을 다루는 장인인 조각장(彫刻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파서 형태를 완성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형태를 지닌 물건의 표면을 두드리거나 깎아 무늬를 새겨서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다. 사실상 조각장이 하는 역할에 더 적합한 말은 조각이 아니라 금, 은, 동 따위의 금속제품에 어떤 무늬를 새기는 것(쇠붙이로 된 물건에 무늬를 쪼아 새기는 일)을 의미하는 ‘조이(雕?: 본래 한자말이 아니라 한자 취음)’이다. 조각장(彫刻匠)이란 명칭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조이장(彫伊匠, 雕?匠)이라고 했다. 조각이 된 금속공예품은 청동기시대 유물에서도 나타나고 삼국시대에는 무기류, 칠지도(七支刀), 마구, 화살통, 철제은입사장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포류수금문정병]처럼 선상감 제품이, 조선말에는 경회루 같은 풍경을 새긴 화각기법을 많이 볼 수 있다. 전통수공예는 조선조 이래 중앙의 경공장과 지방의 외공장(조선시대 지방관청에 소속되어 물품 제작을 담당한 지방기술자)에서 관수용품으로 맡아 제작하였는데 조선 후기 이후부터는 관청수공업체제의 붕과와 더불어 금, 은의 수급에 정부의 엄격한 통제가 가해지면서 공예적인 측면이 현저하게 쇠퇴하는 것이 이 무렵의 수공예 전반에 걸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조선왕조가 붕괴됨에 따라 기술자들은 자연히 광교천변으로 모여 들어 은방도가(銀房都家)를 열어 그 명맥을 유지했고 뒤이어 이왕직미술품제작소가 은방도가를 계승,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 광교천변에 군집해 있던 금은방도가에는 입사장, 조각장 등의 금은세공인이 종사하였는데,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도가(都家)는 주전자, 담배합, 신선로, 화병 등을 만드는 대공방(大工房)과 비녀, 가락지, 방울, 노리개 등의 패물과 수저를 만드는 세공방(細工房)으로 나뉘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대공방과 세공방의 기본 체제는 같으나 다루는 재료나 품목이 전보다 다양해졌고 기물의 작고 큰 것에 의한 분류라기보다는 신변장신구, 혹은 일상생활용품에 따른 용도별 구분으로 세공과 대공의 영역이 나뉘어진다. 이렇게 대공방과 세공방에서 만들어진 금속제품에 대공, 세공별로 무늬나 글씨를 새기는 것이 ‘조이장이’의 일이었는데 옛날에는 은세공이 주였지만 개화의 추진과정에서 조각기술의 전통은 크게 위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