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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자신의 한시와 시조 몇 작품을 모아 친필로 엮은 가첩(歌帖)이다. 이 가첩은 세로 28.9㎝, 가로 11.2㎝ 크기의 필사본 1첩(帖)인데, 표지를 합쳐 전체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선도의 친필 가첩으로 추정되는 ≪山中新曲≫과 이 가첩을 비교하면, 필체와 표구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이 가첩 역시 윤선도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첩에는 <寄伴琴>, <集古寄伴琴>, <思完山琶老集古>, <琴客求詩爲作一絶>, <琴客遺畵扇題詩其上> 등의 한시 5수와 <贈伴琴>, <秋夜操>, <春曉吟> 등의 시조 3수가 함께 실려 있다. 가첩의 제목이 ‘집고’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에 해당하는 작품은 <집고기반금>과 <사완산파노집고> 2수밖에 없다.


 시조의 경우 작품의 창작연대를 알려주는 단서가 각 작품의 주석에 나타나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증반금>에는 ‘白鷄 仲春’, <추야조>에는 ‘白鷄’, <춘효음>에는 ‘赤犬’이라는 주석이 작품의 말미에 부기되어 있다. 이 주석을 통해 <증반금>은 을유년(乙酉年, 1645) 음력 2월에, <추야조>는 같은 해 가을에, <춘효음>은 그 이듬해인 병술년(丙戌年, 1646) 봄에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추야조>와 <춘효음>은 작품의 제목과 내용에서 계절적 배경을 드러내고 있지만, <증반금>은 그렇지 않아서 ‘중춘’이라는 계절을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첩이 윤선도의 친필본이며 세 작품의 창작연대가 적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동안 이 세 작품 모두 을유년에 창작된 것이라고 한 ≪고산유고(孤山遺稿)≫의 기록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증반금>은 다듬어진 거문고의 소리와 맑고 높은 사람의 마음이 조화를 이룬 반금(伴琴) 권해(權海)를 찬양한 작품이다. 작품의 말미에 “그대의 마음은 조화에 그윽하게 합치되니 일곱 줄이 온갖 소리를 굴려 내는 것은 모두 사방 한 치의 마음 사이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매양 그것을 들을 때마다 좋은 맛을 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多君心曲暗合造化 七絃百皆方寸間事 余每聽之忘味)”라고 적혀 있어 권해에 대해 윤선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윤선도는 한시도 여러 수 지어 그에게 보냈는데, 이 가집에 실려 있는 <기반금>과 <집고기반금>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사완산파노집고>, <금객구시위작일절>, <금객유화선제시기상> 등의 나머지 한시들도 작품의 내용으로 보건대 권해와 관련하여 윤선도가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시와 시조 작품들을 통해 윤선도의 음악적 안목이 어떠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추야조>는 지난날에 날뛰던 간신들을 창승(蒼蠅), 즉 쉬파리에, 임금을 미인(美人)에, 태평한 세월을 달빛에 견주어 노래한 작품이다. 또 같은 시상의 연속선상에서 <춘효음>에서는 지난날의 추위와 어둠을 말끔히 씻고 새봄을 맞아 임금을 보고 싶은 심정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노래하였다. 이 두 시조는 정치현실에 대한 작자의 솔직한 심회와 날카로운 비판이 풍자적으로 잘 형상화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집고기반금>과 <사완산파노집고>와 같은 집고시는 윤선도의 시작(詩作) 수업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금쇄동집고≫에 실려 있는 2수의 집고시 외에도 5수의 집고시가 ≪고산유고≫에 더 전하고 있다. 윤선도가 집고시를 쓴 동기에 대해서는 그가 21세(1607년) 때 쓴 <寄李明遠集古>에 부기된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부기된 기록의 “말하고 싶은 소회를 무료히 고구(古句)로 모아 보았습니다. 이는 진실로 이른바 난제(難題)를 버리고 고인의 시를 돌이켜 생각함입니다.(願言之懷 聊集古句 此正所謂難題却憶古人詩者也)”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면, 윤선도는 고인의 시구를 모아서 한 편의 시를 재구성하는 집고라는 형식을 통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고인의 시구라고 하는 것이 전부 중국 시인의 것이어서 주목된다. 집고라는 형식이 단순히 고인의 시구를 모은 것이 아니라 일관된 주제를 향하여 재구성되면서 그 문학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윤선도의 집고시에 모아진 고인의 시구라는 것은 곧 그의 정서 내지는 시의(詩意)에 부합되는 것으로 취사선택하여 정선(精選)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윤선도가 중국 한시를 배우고 익혀서 그의 시작 수업을 쌓았다는 사실을 간취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시작 수업이 지닌 내용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남긴 7수의 집고시에 보이는 중국 시인을 집계해 보면 총 52인이 된다. 그 가운데 빈도수가 많은 시인부터 열거해 보면, 소식(蘇軾)의 시구가 12회, 두보(杜甫)의 시구가 11회, 이백(李白)과 위응물(韋應物)의 시구가 8회, 한유(韓愈)의 시구가 7회, 유문방(劉文房)의 시구가 4회, 맹호연(孟浩然)과 온정균(溫庭筠)의 시구가 3회의 순서를 보인다. 그 외 고적(高適), 이상은(李商隱), 白樂天, 왕유(王維), 유자후(柳子厚), 한군평(韓君平) 등의 시구가 2회 인용되고 있다. 이 52인은 다시 당(唐)과 송(宋)의 시인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는데, 수적으로는 당의 시인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중 도연명(陶淵明)의 유파로 알려진 위응물, 맹호연, 왕유 등의 시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감각 표출로 인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도연명과 함께 자연파(自然派)라는 지칭을 받는 시인들이다. 이러한 사실로 비춰 볼 때, 이들의 시가 윤선도의 한시와 시조 창작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그의 시조의 특징으로 흔히 지적되는 자연미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두보와 고적은 시사(時事)에 관한 시가 많아서 나라를 근심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지정(至情)이 넘치는 시인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고, 온정균과 이상은은 애정시를 주로 창작하였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집고시에 인용된 중국 시인들의 경향과 특징을 통해, 윤선도의 시적 정서의 지향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가첩에 수록된 시조는 한글만으로 표기되어 있는 점에서 한자를 앞세우고 한글로 음을 달고 있는 판본 ≪고산유고≫와 차이가 난다. 이 가첩은 孤山, 蘆溪, 松江全集(沈載完 編, 靑丘大學, 1961)과 海南 綠雨堂의 古文獻(송일기·노기춘, 태학사, 2003)에 영인되어 있다.



①참고문헌 : 李在秀(1955), 尹孤山硏究, 學友社. 沈載完 編(1961), 孤山, 蘆溪, 松江全集, 靑丘大學. 權斗煥(1990), 尹孤山의 漢詩賦 硏究 序, 孤山硏究 제4호, 孤山硏究會. 송일기·노기춘(2003), 海南 綠雨堂의 古文獻, 태학사.

②관련항목: 고산유고(孤山遺稿), 산중신곡(山中新曲)

③키워드: 윤선도(尹善道), 가첩(歌帖), 기반금(寄伴琴), 집고기반금(集古寄伴琴), 사완산파노집고(思完山琶老集古), 금객구시위작일절(琴客求詩爲作一絶), 금객유화선제시기상(琴客遺畵扇題詩其上), 증반금(贈伴琴), 추야조(秋夜操), 춘효음(春曉吟), 권해(權海), 집고(集古)

④원전보기:[해남 녹우당 소장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