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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광해군 때인 1613년(광해군 5)에 태의(太醫)였던 허준(許浚)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원래 1596년(선조 29)에 왕명에 의해 편찬이 착수되었는데, 정유재란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에야 완성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의원에서 이 책이 인쇄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613년(광해군 5)이다. 이 책의 초간본은 활자본으로, 인쇄에 사용된 활자는 갑인자체 훈련도감자이다. 이후 목판으로 여러 번에 걸쳐 복각되거나 중간되기도 하였으며, 중국 및 일본에서 간행된 이본도 다수 존재한다. 여러 이본 가운데 2종의 활자본과 함께 몇 종의 목판본, 그리고 역시 목판본인 《정정동의보감탕액편(訂正東醫寶鑑湯液篇)》등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활자본은 1613년의 원간본으로 보인다.



 2종의 활자본 중 하나는 萬曆四十一年(1613)의 간기와 萬曆四十二年(1614)의 내사기가 갖추어진 완질의 선본(善本)이고, 다른 하나는 낙질본이다. 목판본들은 활자본을 복각하거나 중간한 것인데, 복각본에는 원간본의 간기가 그대로 붙어 있고 중간본에는 ‘歲甲戌(1754) 仲冬 內醫院校正 完營重刊’의 간기가 붙어 있다. 목판본 가운데 乾隆三十一年(1766)의 서문이 붙어 있는 책도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간행된 것이다. 그 외 규장각 소장의 이본으로 <탕액편> 3권 3책으로만 된 것도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간행된 1724년(享保 9)의 원간본이거나 1799년(寬政 11)에 나온 중간본 《정정동의보감(訂正東醫寶鑑)》에서 <탕액편>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문 사이에 부분적으로 가나(假名)가 인쇄되어 있고, 곳곳에 한글의 오각이 눈에 띈다. 이 외에도 ‘己亥(1659?, 1719?) 仲秋 內醫院校正 嶺營開刊’의 간기를 가진 것(국립중앙도서관 및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소장), ‘歲甲戌(1754) 仲冬 內醫院校正 嶺營開刊’의 간기를 가진 것을 비롯하여 국내에서 간행된 다수의 이본이 존재하고, 일본에서 1724년과 1799년에 간행된 책과 중국에서 1763년과 1796년에 각각 간행된 책, 역시 중국에서 석인본(石印本)으로 나온 《정정동의보감》 등의 책이 있다. 이렇듯 수많은 이본이 존재하게 된 것은 방대하면서도 충실한 내용, 높은 실용성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널리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완질은 모두 25권 25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끝의 2권 2책은 목록이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내경편(內景篇; 4권 4책), 외형편(外形篇; 4권 4책), 잡병편(雜病篇; 11권 11책), 탕액편(湯液篇; 3권 3책), 침구편(鍼灸篇;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탕액편>은 약재의 속명(俗名)이 한글로 병기되어 있는데,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일종의 분류 어휘집으로서 국어사적 가치가 크다. <탕액편>에는 640여 개의 약재 이름이 수부(水部), 토부(土部), 곡부(穀部), 인부(人部), 금부(禽部), 수부(獸部), 어부(魚部), 충부(蟲部), 과부(果部), 채부(菜部), 초부(草部), 목부(木部), 옥부(玉部), 석부(石部), 금부(金部) 등으로 나뉘어 나열되어 있는데, 한글로 된 속명 다음에는 약재의 성질, 맛, 약효, 채취 시기 등이 기재되어 있다. 원간본의 <탕액편>에 수록된 어휘들은 대체로 17세기 초반 국어의 모습을 보여준다. 표기면에서는 ‘납향?(1:15a), ??(1:20a)’와 같이 어두 된소리의 표기에 ‘?’이 나타나는 점, ‘?, ?, ?, ?, ?, ?, ?’의 합용병서가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각자병서 표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맛시 ?고(1:17b), 돋? 불(1:52b)’과 같은 중철 표기가 다소 보이고, ‘?믈(1:15a), ?미나리(2:40a)’에서와 같이 종성의 ‘ㅅ’이 ‘ㄷ’으로 표기된 예가 나타난다. ‘?믈(1:15a)~빈믈(1:16a)’과 같은 예는 자음동화 현상이 반영된 것인데, 자음동화가 반영되지 않은 표기도 공존한다. 이른바 ‘ㅎ’종성 체언은 ‘바다?(2:11a)’와 같이 모음 앞에서는 ‘ㅎ’이 나타나나, ‘수?(1:33a), 암?(1:34b), 수가? 음?(1:51b)’처럼 폐쇄 자음 앞에서는 종성의 ‘ㅎ’이 사라진 형태도 보인다. ‘?버?(1:19b)~벌에(2:16b)’와 같은 예에서는 2음절 이하에서 ‘에’와 ‘?’가 혼기된 예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근대국어의 특징에 속하지만 구개음화나 원순모음화 같은 음운 현상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나 ‘?’이 표기에 등장하는 것 등은 다소 보수적인 일면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이전 시기 의서들의 어휘를 수용하면서 그러한 보수성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법 형태의 쓰임에 있어서는 접속조사의 경우 선행어의 말음에 관계없이 ‘과’가 쓰인 점이 특징적이다. ‘나모 구무과 왕대 ?르? 고? 빈믈(1:16a), 글흔 믈과 ? 믈 ?니(1:17b)’ 등의 예에서 모음과 종성 ‘ㄹ’ 다음에도 ‘과’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86년에 태학사에서 1613년의 활자본, 1754년의 완영 중간본(完營重刊本), 1766년의 중국본, 《정정동의보감》의 <탕액편>을 각각 영인하여 펴낸 바 있다.




(김진형)

① 참고문헌 윤병태(1966), 동의보감 해제, 도서관 106, 국립중앙도서관. 이철용(1992), 동의보감 이본들에 대한 국어학적 고찰, 한국학논집(한양대 한국학연구소) 20. 홍윤표(1986), 동의보감 해제, 한국어학자료총서 제6집, 태학사.
② 관련항목:
③ 키워드: 허준, 의서, 내의원, 훈련도감자, 합용병서, 자음동화, 구개음화, 원순모음화, 접속조사
④ 원전보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원간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