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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1489년(성종 20) 윤호(尹壕), 임원준(任元濬), 허종(許琮) 등이 왕명을 받아 8권 8책으로 편찬, 간행한 의학서이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구급방서(救急方書) 중에서 가장 정리가 잘된 책으로, 질병을 중풍, 두통 등 127종으로 나누어서 그 치료 방문을 모아 엮었다. 이 책은 부녀, 아동이라도 이 책을 보고 직접 치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문은 물론 병명까지 한글로 언해를 붙여놓았다. 이런 특징은 이전에 간행된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 등의 의학서와 구별되는 점이다. 《구급간이방언해》는 한때 9권으로 간행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 20년 5월 기사에서 “內醫院提調 領敦寧尹壕等 進新撰救急簡易方九卷”이라는 기록이 있어 이런 추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허종의 서문에 “書成凡爲卷八 爲門一白十七 命曰救急簡易方(2b)”이라는 내용이 있고 목록에서도 8권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8권으로 간행된 것이 확실하다. 서문에 나오는 “弘治二年(1489)己酉九月...許琮 敬序”라는 기술에서 1489년 9월에 이 책이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형태를 규장각 소장본(<一? 古 615.135-Y97g>)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책의 크기는 29.6×19cm이다. 본문의 각 면은 사주단변(四周單邊)에 계선(界線)이 그어져 있다. 변란(邊欄)의 크기는 21.3×14.2cm, 매면 행수는 8행이고 행당 자수는 l7자로 주(注)는 쌍행으로 되어 있다. 판심은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판심서명은 ‘간이방(簡易方)’으로 되어 있다. 원간본은 을해자(乙亥字)로 간행되었는데 현재 전하지 않고 복각한 중간본만 전한다. 《성종실록》 20년 5월에 실린 “壕等啓曰 諸邑難以遍頒 請令道監司 開刊于本道 界首官印行”이라는 기사로 보아 이 중간본이 지방에서 복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전의 《고사촬요(故事撮要)》에 실린 책판 목록에는 원주, 전주, 남원, 합천, 곤양, 해주 등에 책판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전하는 중간본은 권1, 권2, 권3, 권6, 권7의 다섯 책이다. 권1은 규장각 일사문고, 권2는 김영탁(金永倬) 씨, 권3은 동국대 도서관, 권6은 한독약품 약사관과 이겸로(李謙魯) 씨, 권7은 고려대 만송문고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이들은 동일한 판본은 아니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권1은 표지에 ‘구급간이방 전(救急簡易方 全)’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에 와서 써 붙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 허종의 서문이 나오고 목록이 권1부터 권8까지 127항에 걸쳐 나열된 후에 권1의 본문이 나온다. 권2는 본문부터 시작되는데, 이중 장51이 낙장이다. 권2는 권1에 비해 책이 매우 낡았지만 모두 을해자본의 복각본으로 자체(字體)가 고르지 못하고 자획(字劃)도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권2의 장90, 91은 서체가 다르고 방점표기도 나타나지 않는 점으로 보아 후대에 보완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1의 앞에 총 목차가 수록되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권1은 ‘중풍’ 등 ‘풍(風), 한(寒), 서(暑), 습(濕)’으로 생기는 질병과 그에 대한 치료방을 15개 부문에 수록하였다. 권2는 ‘두통’ 이하 14개의 부문으로 질병을 구분하여 수록하였다. 권3은 ‘구창(口瘡)’에서 ‘야타소변(夜多小便)’까지 17개 부문, 권4는 ‘퇴산(?疝)’에서 ‘물입이(物入耳)’까지 12개 부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권5는 ‘고독(蠱毒)’에서 ‘수족렬(手足裂)’에 이르는 14개 부문, 권6은 ‘골경(骨?)’에서 ‘치반흔(治瘢痕)’까지 22개 부문으로 구분하였다. 권7은 ‘부인문(婦人門)’으로 ‘임신중풍(姙娠中風)’에서 ‘유즙부하(乳汁不下)’까지 13개 부문으로 나누어 부인과에 속하는 각종 질병 및 처방을 수록하였다. 권8은 ‘소아문(小兒門)’으로 20개 부문의 소아 관계 질병을 다루었다. 의학서 편찬과 관련하여, 세종이나 세조는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의학서 언해 사업은 급박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이 《벽온방(?瘟方)》을 이어(俚語)로 번역해서 반포한 일이 있고 세조 때에 의학서의 정리와 언해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때에는 《구급간이방》이 언해되었을 뿐이고 중종 때에 와서야 의학서에 대한 언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선조 때에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구급간이방》은 《구급방》과 더불어 의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책이라 하겠다. 《구급간이방언해》를 편찬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우선, 《성종실록》 19년 9월 ‘如鄕藥集成方所載藥 欲令齊民 皆能辨識而用之 宜令老醫 抄其功於常用者 譯以諺文 用鑄字 印布民間’이라는 기사에서 성종이 백성들을 위해 향약집성방을 언해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1년 뒤에 간행된 이 책에 나오는 허종의 서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서문에 “상(上)이......급한 병중에 의서의 번잡한 치료방을 뒤지다가 속수무책하는 병폐를 시정하고자 그 전에 만들어진 《의방유취》의 번잡한 부분을 버리는 한편 《향약제생방(鄕藥濟生方)》, 《구급방》 등에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여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간편한 방서를 명하였다. 이에 윤호, 임원준, 허종 등에게 명하여 소속 관원들을 동원하여 고방서(古方書)의 요점을 수집하고 성상이 이를 직접 고치고 언해하여 8권 127부문으로 나누어 《구급간이방》이라 명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에서 이 책이 《구급방》 등의 고방서를 참고로 하였지만 민간에서 병을 고치는 데 편리하게 하고자 책을 편찬한 것을 알 수 있다. 《구급간이방언해》 편찬에는 윤호, 임원준, 허준 세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더 참여하였다. 《성종실록》 20년 9월 기사에는 성종이 이 책을 편찬한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하사한 물품과 그 사람들 명단이 있는데, 권건(權健), 송흠(宋欽), 차득참(車得?), 윤사하(尹師夏) 등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우선 병에서 중요하고 급한 것을 먼저 취급하였고 약은 간단하게 기술하여 만드는 것을 쉽게 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이전에 간행된 의학서들보다 병의 항목을 자세하게 분류하고 기술하였다. 이 책은 의학서로서 우리나라 의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면서 또한 언해본으로서 중세국어 연구에 특이한 자료가 된다. 우선 방점과 ‘?, ?’ 등이 사용되었다. ‘?’을 가진 어휘는 대부분 ‘?’으로 나타나는데, ‘??예(1:36b)/?이예(1:19b), 두?(2:3b)/두어(2:90b)’에서처럼 ‘?’이 없어진 예도 보인다. 한자음에서의 ‘?’은 ‘??(1:43b), ?병(1:112a)’에서처럼 어두에까지 사용되었다. ‘브?(1:6a), 브?라(1:11a)’에서는 ‘ㅅ’불규칙용언의 활용을 볼 수 있다. ‘?’자 표기는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으나 ‘ㅇ’으로 표기된 예들도 있다. 이는 복각(覆刻) 상의 문제와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두자음군은 주로 ‘?, ?, ?, ?, ?, ?, ?, ?, ?’ 등의 합용병서가 나타나고 각자병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귓것 귀?(鬼字, 1:49a)’란 예만 보인다. 자음동화와 관련된 표기는 ‘?녀(1:69a), 움즈겨 ?뇨?(1:65a), 옮?녀(1:89b)’의 예에서만 나타난다. 음절말 ‘ㅅ’과 ‘ㄷ’의 표기와 관련하여 ‘?다(好)’가 ‘??니라(1:43a), ??니(1:80b)’ 등의 예가 주목된다. 이 예들은 자음동화와 관련하여 자음동화 되기 전 단계를 보이는 표기라고 할 수 있다. 어두경음화 현상은 ‘?허(1:10a), ?흐니와(1:16a)’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두유기음화 현상은 ‘??(2:61a)/?왜(1:29a), ?와(1:60b)’에서만 보인다. ‘ㅎ’종성체언의 ‘ㅎ’이 ‘우희(1:16b), 뒤헤(1:60a), 고콰(1:69b)’에서처럼 나타나고 특수어간 교체를 보이는 명사로 ‘곳굼글(1:65b), ??(1:3a), 몰애(1:75a)’ 등에서 확인된다. ‘ㄱ’탈락 현상도 ‘?오(1:69a), ??에(1:112b), 아니어든(1:90a)’ 등에서 보인다. 사이시옷은 합성어의 경우 활발하게 나타나는데 통사적인 기능과 관련되는 ‘봄과 녀름괏 ??나 녀름과 ??왓 ??예(1:102a), 분지 미? 누른 거슬(1:112a)’ 등의 예를 볼 수 있다. 분철과 연철의 혼란은 주로 체언과 조사의 결합에서 볼 수 있다. ‘녁을(1:77a)/녀긔(1:20b), 독이(1:69a)/도기(1:70a), 말?을(2:65b)/말?미(1:6b), 입에(1:36a)/이베(1:2b)’ 등에서 이런 혼란을 확인할 수 있다. ‘오, 우’ 교체를 보이는 ‘무로피어나(1:59b)/무루피(1:89b), 머고미(1:1a)/머구미(2:88b)’ 등의 예도 있다. 한편, 1446년(세조 12)에 간행된 《구급방언해》에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썼음에 비해 이 책에서는 현실 한자음을 사용하고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특징들에서 이 책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의 표기 경향을 보인다고 하겠다. 이 책에 쓰인 약초와 관련된 독특한 어휘나 사물과 관련되는 표기명도 국어사 연구에 이용된다. ‘冬麻子 돌열?(1:11a), 鶴蝨 ?의오좀플(2:38a), 車前子 뵈?이?(2:97b), 白? 대왐?불휘(2:99b), ?根 곱도?불휘(2:106b)’ 등에서 약초명을 확인할 수 있다. ‘半夏 ?모롭(1:7b), 熊膽 고?열(2:38a), 地龍 ?위(2:108a)/?蚓 ?위(1:104a), 蝦? 두터비(1:111a), 馬赤 졀다?(2:99a)’ 등에서 사물명을 볼 수 있다. 또한 국어에 적당한 이름이 없어 한자 용어를 그대로 풀어쓴 다음의 예들도 있다. ‘穀賊 곡식에 몬내 염근 것(2:76a), 烏梅肉 ?홧여름 검게 그?려 ??니(1:2a), 草霜 ? 미? 거?영(2:78a)’ 등의 예가 있다. 이런 약초명이나 사물명 등은 국어 어휘사 연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권1은 규장각 일사문고, 권2는 김영탁(金永倬) 씨, 권3은 동국대 도서관, 권6은 한독약품 약사관과 이겸로(李謙魯) 씨, 권7은 고려대 만송문고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의 권1과 김영탁 씨 소장의 권2가 1982년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동양학총서》9집으로 영인되었다.(권용경) ①참고문헌 권용경(2001), 救急簡易方諺解, 奎章閣所藏語文學資料-語學篇 解說, 서울대학교 규장각. 田光鉉(1982), 救急簡易方諺解 解題, 救急簡易方諺解 影印本, 東洋學硏究所. 安秉禧(1979), 中世語의 한글 資料에 대한 綜合的인 考察, 규장각 3, 서울대 도서관. 柳在泳(1985), 이름 表記의 考察-<救急簡易方諺解>를 中心으로-, 國語學論叢(羨烏堂金炯基先生 八지紀念), 創學社. ②관련항목: 향약집성방, 구급방언해, 간이벽온방, 촌가구급방 ③키워드: 의학서, 구급방서(救急方書), 을해자(乙亥字), 윤호(尹壕), 임원준(任元濬), 허종(許琮), 간이방(簡易方), 중풍, 두통, 부인문(婦人門), 소아문(小兒門), 약초명 ④원전보기: [영남대소장본 권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