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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1642년(인조 20)에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지은 연시조 작품이면서 또한 그의 친필 가첩(歌帖)의 제목이기도 하다. 윤선도의 시조는 전부 그의 문집인 ≪孤山遺稿≫ 卷6 別集 下에 ‘歌辭’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문집에 전하는 <산중신곡>은 <漫興> 6수를 비롯하여 <朝霧謠> 1수, <夏雨謠> 2수, <日暮謠> 1수, <夜深謠> 1수, <饑歲歎> 1수, <五友歌> 6수 등으로 전체 18수이다. 그러나 전라남도 해남(海南)의 윤선도 종가(宗家)에 소장된 친필 가첩 ≪山中新曲≫에는 <古琴?> 1수가 마지막에 덧붙여져 총 19수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문집의 것과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 작품의 수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壬午 公五十六歲 在金鎖洞 作山中新曲十八章”이라는 <孤山年譜>의 기록과 “壬午在金鎖洞時”라는 제명(題名)에 부기된 주석을 참고한다면, 이 작품은 윤선도의 나이 56세 때인 1642년에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에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산현감에서 파직되어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와 있다가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규합하여 출정하였다. 그러나 굴욕적인 화의 소식을 듣고는 세상을 개탄하며 보길도(甫吉島)에 숨어 살았는데, 이때 임금의 환도에 분문(奔問)하지 않고 섬에 들어가 호사를 일삼는다는 비난을 받고서 영덕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8개월 후 귀양에서 풀려난 그가 고향의 금쇄동에 기거하면서 산중생활에서 촉발된 감흥을 읊은 것이 바로 이 연시조 작품들이다. <만흥> 6수는 산중생활에서 느끼는 감흥을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원시이면서 곧 산수시라 할 수 있다. 자연에 묻혀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작자의 분수에 맞는 일이라고 노래하면서도 인간세계에서 소외된 작자의 고독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임천한흥(林泉閑興)을 비길 데가 없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임금에게 충성을 바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탄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조무요>는 임금을 높은 산과 해에 비유하고 충성스럽지 못한 신하들을 안개에 비유하여 당대 정치 현실을 드러낸 작품이다. 높은 산봉우리를 뒤덮고 있는 안개가 햇살이 퍼지면 곧 걷힐 것이라고 하면서 작자의 현실인식을 읊고 있다. <하우요> 2수는 장마철의 농촌생활을 눈에 선하게 그린 작품이며, <일모요>는 유배에서 돌아온 뒤 세상의 명리를 잊고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과 한정(閑情)을 회화적 표현과 동정(動靜)의 대비를 통해 나타낸 작품이다. <야심요>는 산중 생활의 한가로움과 편안함을 순 우리말로 노래한 작품이며, <기세탄>은 환자(還子)를 타서 겨우 먹고 사는 궁핍한 현실을 시대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환자의 폐해를 시운(時運)으로 돌림으로써 현실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작자의 계층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오우가> 6수는 자연을 탐구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자연 속에서 인간적 윤리를 추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물, 바위, 솔, 대, 달’의 다섯 가지 자연물을 긍정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선택하여 ‘구름, 빛, 바람소리, 꽃, 풀, 잎, 나무’라는 부정적 가치를 지닌 자연물과 대비시켜 ‘부단(不斷), 불변, 불굴, 불욕(不欲), 불언(不言)’이라는 유교의 실천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산중신곡>은 두 개의 자연관을 담고 있다. 하나는 감성으로써 자연을 느끼는 ‘자연감정’으로, <하우요>, <일모요>, <야심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다른 하나는 이성으로써 자연을 생각하는 ‘자연인식’인데, <오우가>에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이들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자연감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유미론적 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이 작품의 시조문학에서의 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표기법에서 문집과 가첩이 약간 차이가 난다. 문집에서는 한자를 앞세우고 한글로 음을 달았으나 가첩에서는 한글만으로 표기하였다. 대체적으로 가첩의 표기가 고형(古形)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가첩은 이재수(李在秀)의 조사로 그의 <尹孤山硏究>(學友社, 1955)에 영인되어 있고, <孤山, 蘆溪, 松江全集>(沈載完 編, 靑丘大學, 1961)에 ≪고산유고≫와 함께 다시 영인된 것이 수록되어 있다. (최현재) ①참고문헌: 李在秀(1955), 尹孤山硏究, 學友社. 沈載完 編(1961), 孤山, 蘆溪, 松江全集, 靑丘大學. 朴晟義(1966), 松江·蘆溪·孤山의 詩歌文學, 玄岩社. ②관련항목: 고산유고(孤山遺稿) ③키워드: 윤선도(尹善道), 만흥(漫興), 조무요(朝霧謠), 하우요(夏雨謠), 일모요(日暮謠), 야심요(夜深謠), 기세탄(饑歲歎), 오우가(五友歌), 연시조, 가첩(歌帖), 해남(海南), 금쇄동(金鎖洞) ④원전보기:[해남 녹우당 소장 원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