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김부식 (金富軾)
1075(문종 29)~1151(의종 5),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호는 뇌천(雷川), 본관 경주.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우사간(右司諫)을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는 등 일찍부터 요직(要職)을 역임하였다. 1122년(인종 즉위) 그가 보문각 대제(寶文閣待制)로 있을 때, 이자겸(李資謙)이 왕의 외척으로서 권제를 쥐고 군신의 예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므로 이를 충고하여 시정하게 하였다. 박승중(朴昇中), 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睿宗實錄)>을 수찬하였고, 1134년(인종 12) 묘청(妙淸)이 도참설(圖懺說)로써 왕을 설득시켜 서경(西京 : 평양)으로 천도하려고 하자 극력 반대하여 이를 중지시켰고, 이듬해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원수(元帥)로서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10개월 만에 난을 평정하였다. 1138년에는 집현전태학사(集賢殷太學士)를 역임하고, 1142년 벼슬에서 물러나자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이 되었다.


 그의 정치이념은 철저한 사대주의 사상(事大主義思想)으로 일관되어 있어, 1126년(인종 4)에 송나라가 금(金)나라를 협공(挾次)할 것을 요청하자 이를 거절하였고, 묘청이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주장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1145년(인종 23) 왕명을 받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을 완성하였다.


 문장과 음악에 뛰어나, 송나라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는 관반(館伴)으로서 그를 대접하였는데, 이때 같이 왔던 서긍(徐競)이 그의 뛰어난 문체와 고금 음악에 정통한 예술적 조예에 감탄,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저서에 김부식을 소개하여 송 황제에게 바침으로써 송나라에도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문집20여 권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는다. 죽은 후 중서령(中書令)에 추증.


[文獻] 高麗史, 黃元九:金富軾 等

[영정개요]
-표준영정 지정년도: 1993
-제작 작가: 권오창
-영정크기: 91 X 117(가로X세로cm표시)
-소장지 및 소장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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