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세종 (世宗)
1397(태조 6)~1450(세종 32), 조선의 제4대왕

 태종의 셋째 아들.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후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훌륭한 치적을 많이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황 희(黃喜), 맹사성(孟思誠)등 청백리(淸白吏)를 등용하였고,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최항(崔 恒) 등의 학자를 등용, 학술연구를 활발히 하였다.


 궁내에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여 성삼문, 신숙주, 최항 등으로 하여금 1443년(세종 25) 한글을 창제케 하고, 1446년(세종 28) 이를 반포하였다. 또한 경인자(庚寅字), 갑인자(甲寅字) 등의 활자도 제작했는데, 갑인자는 특히 정교하기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억불책(抑佛策)을 썼으나, 말년에는 왕실 불교를 장려하는 등 불교 발달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음악(音樂)에도 관심을 기울여 아악(雅樂)을 정리하였다. 실록(實錄)보관을 위하여 춘추관(春秋館), 충주(忠州), 전주(全州), 성주(星州)에 4대 사고(史庫)를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과학기술에 대한 업적은 1442년(세종24) 이 천, 장영실(蔣英實)로 하여금, 우량(雨量) 분포 측정기인 측우기(測雨器)를 제작하게 했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 가스델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欽敬閣)을 설치하여 과학기구를 비치하도록 하였고, 혼천의(渾天儀), 해시계, 물시계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전국의 토지를 비옥도(肥沃度)에 따라 전분6등법(田分六等法)으로 나누어 조세의 공평화를 도모하였다. 의창(義倉), 의료제도, 금부삼복법(禁府三覆法)을 제정하였으며, 노비(奴婢)에 대한 지위 개선 및 사형(私刑)을 금하도록 하였다.


 또한 대외정책에서는 국가의 주권 확립과 영토 확장에 진력하였다.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金宗瑞)로 하여금 구축하여 6진 (六鎭)을 개척하였고,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崔潤德)으로 하여금 구축하게 하여 4군(四郡)을 설치 국토를 확장하였다. 이 때의 국경선이 압록강으로 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었으며, 이 곳으로 사민정책(從民政策)을 실시하는 등 국토의 균형 잡힌 발전에 진력하였다. 일본에는 이종무(李從茂)로 하여금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對馬島)을 정벌하게 하는 등 재위기간 동안 수많은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성군이셨다. 능은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영릉(英陵)이며, 처음에는 광주(廣州)에 있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이 곳으로 옮겼다.


[文獻] 世宗實錄, 國朝寶鑑, 李光麟 世宗大王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3
- 제작작가 : 운보 김기창
- 영정제공 및 저작권자 : (재)운보문화재단
- 영정크기 : 세로120cm X 가로180cm
- 소 장 지 : 여주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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