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이이 (李珥)
1536(중종 31)~1584(선조 17), 조선시대의 문신, 학자

 호는 율곡(栗谷). 본관 덕수(德水).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강릉(江陵) 출신이다. 어려서 어머니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경을 연구하다가 다시 유학(儒學)에 전심하고 23세 때 이 황(李 滉)을 찾아가 만났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生員試),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모두 장원하여 호조좌랑(戶曹佐郎)에 초임되고, 1568년(선조 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73년 직제학이 되고 다음해 우부승지(右副承旨), 병조참지(兵曺參知), 대사간 등을 지핀 뒤 병으로 사퇴했다. 그 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다시 사퇴하고 학문연구에 전심했다. 1581년(선조 14)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大提學)을 지내고 이듬해 이조, 형조, 병조의 판서, 우참찬(右參贊)을 엮임, 1583년(선조 16)당쟁을 조장한다는 동인(來人)의 탄핵을 받고 사직했다. 그 해 다시 등용, 이조판서에 이르러 동서분당의 조정을 위해 진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글자의 자구해석보다 근본원리를 자유롭게 종합적으로 통찰함을 기본으로 하여 우주만물의 존재의 근원은 기(氣)에 있으며, 모든 현상은 기가 움직이는 데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이(理)는 기의 작용에 내재(內在)하는 보편적 원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모든 현상의 변화와 발전을 기의 작용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념적이기보다는 실천적 윤리를 인간의 본연의 성(性)보다는 기질의 성을 더 중요시하여 이른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근본사상으로 하는 이황의 주리적(主理的)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대립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의 차이는 후일 당쟁의 전개과정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제자인 김장생(金長生), 정엽(鄭曄) 등에 의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가 이루어지고, 이황의 제자들인 영남학파와 더불어 조선시대 유학의 쌍벽을 이루었다.


 실천을 중시한 그의 학문 경향은 그의 경세관(經世觀)에 그대로 반영되어 당쟁의 조정에 힘쓰며 10만 대군의 양성 및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의 실시를 주장했으나 생전에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著書] 聖學輯要, 擊蒙要訣, 栗谷全書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5
- 제작작가 : 이당 김은호
- 영정크기 : 세로150cm X 가로85cm
- 소 장 지 : 강릉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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