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철종 (哲宗)
1813(순조 31)~1863(철종 14), 조선의 제 25대 왕

 재위 1849~1863, 초명은 원범(元範),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로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이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 순조의 비, 金祖淳의 딸)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때 나이 19세였으며 강화도에 살던 농사꾼이었다.


 1844년(헌종 10) 형 회평군(懷平君) 명(明)의 옥사(獄事)로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명을 받아 봉영의식(奉迎儀式)을 행한 뒤 덕완군(德完君)에 봉해지고,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서 관례(冠禮)를 행한 뒤 인정전(仁政殿)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농사꾼이 되어 정치를 할 수 없어서 처음에는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1년(철종 2) 대왕대비의 근친인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그 뒤 김문근이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으로 국구(國舅)가 되어 정권을 장악하게 되니, 순조 때부터 시작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또 다시 계속된 것이다.


 철종은 1852년부터 친정을 하였으나, 정치에 어둡고 안동김씨 일파의 전횡(專橫)으로 정치는 극도로 어지러워 삼정(三政 : 田政, 軍政, 還穀)의 문란이 더욱 심해져서 탐관오리가 날뛰고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주, 제주, 함흥 등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때 최제우(崔濟愚)가 동학(東學)을 창도하여 사창 운동을 전개 확산하자 이를 탄압, 교주 최제우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잡아 처형하였다. 1863년 재위 14년, 33세로 죽었다. 박영효(朴泳孝)에게 출가한 옹주 하나가 있을 뿐 후사가 없었다. 능은 예릉(睿陵).


[文獻] 憲宗, 哲宗實錄, 高宗實錄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9
- 제작작가 : 석영 최광수
- 영정크기 : 세로205cm X 가로108cm
- 소 장 지 :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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