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태종 무열왕 (太宗武烈王)
604(진평왕26)~661(무열왕 8), 신라 제29대 왕

 성은 김(金), 이름은 춘추(春秋). 이찬 용춘(龍春 : 龍樹)의 아들.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金氏)이다. 642년(선덕여왕 11)백제의 침입으로 대야성(大耶城)이 함락되고, 사위인 성주(域主) 품석(品釋)이 죽음을 당하자, 고구려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고자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을 만났으나, 국경의 영토문제로 감금당했다가 돌아왔다.


 웅변에 능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서 사신으로 일본과 당(唐)나라에 다녀왔으며, 특히 당나라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외교에 성과를 거두고 군사원조까지 약속받아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654년 진덕여왕이 후계자가 없이 죽자, 신라왕실에 성골(聖骨)이 다하여 진골(眞骨)의 신분으로 군신(群臣)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함으로써, 신라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 되었다.


 즉위 후에 이방부령(理方府令) 양수(良守)에게 명하여 율령(律令)을 상정(祥定)케 하고, 이방부격(理方府格) 60여 조를 제정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당나라와 계속 친교를 맺어 깊은 신뢰를 얻고,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신라왕(新羅王)에 책봉되었다. 660년(무열왕 7) 당나라에 청원하여 당나라가 백제 정벌의 대군을 파견하자, 왕자 법민(法敏; 文武王)과 김유신 등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케 하였다. 이듬해 백제의 부흥군(復興軍)을 격파하고, 이어 고구려 정벌의 군사를 일으키다가 죽었다. 그의 재위기간에 신라 왕권의 전제화(專制化)가 확립되었고, 또한 크게 성장한 귀족세력을 중심으로, 당나라의 율령제도(律令制度)를 모방한 관료체계가 정비되었으며, 구서당(九誓幢)이라는 9개 군단(軍團)의 설치로 군사조직이 강화되는 등 본격적인 국가체제가 확립되었다. 또, 김유신의 매부(妹夫)가 됨으로써 경주 김씨 왕실과 김해 김씨와의 결합이 성립되었고, 그의 직계자손으로 8대가 계속됨으로써 120년 동안 정치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文獻]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唐書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7
- 제작작가 : 운보 김기창
- 영정제공 및 저작권자 : (재)운보문화재단
- 영정크기 : 세로181cm X 가로121cm
- 소 장 지 : 경주 통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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