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이차돈 (異次頓)
506(지증왕 7)~527(법흥왕 14), 신라의 불교순교자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학문과 무예를 열심히 닦아 장차 나라를 이끌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법흥왕의 근신(近臣)으로서 벼슬이 내사사인(內史舍人)에 올랐다. 그가 장성하자 왕은 그를 공주와 결혼시켜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그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자 왕의 노여움을 사서 고구려로 쫓겨났다.


 고구려에서 불교를 알아 승려가 되었으며, 불법의 빛을 모든 신라 백성들에게 전파하여 그들을 미망에서 벗어나게 하여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귀국하였다. 법흥왕 앞에서 설법을 하였고, 그 후 왕은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572년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國敎)로 하고자 했으나 재래의 토착신앙에 젖은 조신(朝臣)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그는 마땅한 절을 지을 터를 물색하던 중 천경림(天鏡林)이란 명당을 찾았으나, 그곳은 당시에 왕성하던 재래토착 신앙에서 신성시하는 지역이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침내 그들의 모함을 받아 주살(誅殺)당하게 되었다.


 그는 만일 부처가 있다면 자기가 죽은 뒤에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과연 예언대로 잘린 그의 목에서 흰 피가 나오고 하늘이 컴컴해 지더니 꽃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후 신하들도 마음을 굽혀서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817년(현덕왕 9) 국통(國統) 혜륭(惠隆)은 그를 찬양하는 비를 세웠다.


[文獻] 三國史記, 三國遺事, 海東高僧傳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3
- 제작작가 : 우현 송영방
- 영정크기 : 세로116cm X 가로91cm
- 소 장 지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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