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이윤재 (李允宰)
1888~1943 / 한말의 국어학자, 독립운동가
생애 및 업적
  •  이윤재는 한글과 독립운동을 위하여 이 땅에서 태어난 애국지사였다. 이윤재는 188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소년기에는 한학을 배우다가 늦게야 신학문에 뜻을 두어 대구 계성학교(泌梨準拉)와 중국 북경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마산, 영변, 정주, 서울 등지의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고,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에서도 강의를 맡았다. 평북 영변의 숭덕학교에서는 3.1 독립운동을 주동하였고, 흥사단에 가입하여 수양동우회(條淺同友禽)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또한 이윤재는 한글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조선어사전 편찬, 한글맞춤법의 통일과 표준어의 사정, 외래어 표기법의 작성 등을 주도하고 또 <한글> 이란 국어 연구 잡지의 발간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대구 계성(啓聖)학교에서 수업하고 평북 영변(寧邊)의 숭덕(崇德)학교에 재직 중 3.1 운동에 가담, 3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중국 베이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24년 귀국, 오산(五山), 배재(培材) 등 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잡지 《한글》을 편집하였다. 1927년 조선어학회 《우리말 사전》 편찬위원이 되고 1934년 설립된 진단학회(震檀學會)에 가입, 국사연구에도 참여하였다. 


     평생 동안 한글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쳤던 그는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가 끝내 조국 광복의 기쁨을 보지 못하고 함흥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윤재는 일제 강점하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한글의 맞춤법 통일안, 표준어 사정, 외래어 표기법 등의 확립과 이의 보급, 조전어사전 편찬과 교육활동에 일생을 바친 국어학자이며 독립 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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