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천여 유일한 (天汝 柳一韓)
1895~1971 / 기업가
  • 문화체육관광부는 20세기 초 일제통치의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국민건강과 독립을 위한 신념위에 기업을 운영한 유일한 선생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유일한 박사는 1936년에 사원지주제(社員持株制)실시, 1962년 주식공개를 통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또한『유한교육 신탁관리위원회』등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교육장학사업 및 사회사업을 실시했으며, 혈연관계가 없는 회사간부사원에게 사장직을 인계하는 등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윤리의 새로운 모범을 보였다.
생애 및 업적
  •  선생은 1895년1월5일(음력 1894년12월13일) 평남 평양에서 유기연(柳基淵)씨와 김기복(金基福)씨 사이에 6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本貫)을 진주 유씨(晋州 柳氏), 자(字)는 천여(天汝)이다. 1904년 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신문배달, 아르바이트 등 고학을 하며 헤스팅스 고등학교,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ic Co,)에 회계사로 입사 하게 되었으나,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 (韓人自由大會)"에 참석하고 제너럴 일렉트릭사를 그만둔 후 대학시절의 친구인 월레스 스미드와 합작하여 1922년에 라초이(숙주나물) 식품회사를 창립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


     사업상 목적으로 귀국할 당시(일제시대)의 상황에서 특히 선생의 눈길을 끈 것은 비참할 정도의 의학계의 후진성이었다. 철마다 찾아드는 돌림병, 난무하는 엉터리 의사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각종 기생충, 결핵, 학질, 피부병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적당한 약이 없었다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에 선생은 일제하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약이 없어 질병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의 설립이 시급하며,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아래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듯이 그의 기업동기나 목적은 애국·애족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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