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 / 조선시대의 문신, 소설가
  • 문화체육부는 조선시대 문신이자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선생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관료로서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설가로 <구운몽>,<사씨남정기> 같은 국문소설의 창작을 통해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국자의식(國字意識)을 강조하여 허균과 조선후기 실학파 문학을 잇는 역할을 하였으며, 가사문학의 송강, 정철, 시조문학의 고산 윤선도와 함께 3대 고전 문학가로 일컬어지는 훌륭한 분이다.
생애 및 업적
  • 조선후기의 문신, 소설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 서포 김만중은 조선조 예학(禮學)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 의 증손이요, 충렬공(忠烈公) 익겸(益謙)의 유복자로 1637년 태어났으며,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의 아우로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숙부이다.


     1665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정언(正言), 지평(持平), 수찬(修撰), 교리(校理)를 거쳐 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 삼남(三南)의 진정(賑政)을 조사하였다. 이듬해 겸문학(兼文學), 헌납(獻納)을 역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작고하여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그후 다시 등용되어 1679년 예조참의, 83년 공조판서,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조지겸(趙持謙) 등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5년 홍문관 대제학이 되었고, 이듬해 지경연사(知經筵事) 로 있으면서 김수항(金壽恒)의 아들 창협(昌協)의 비위(非違) 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으나, 88년 방환(放還)되었다. 이듬해 박진규(朴鎭圭), 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여기서 <구운몽 (九雲夢)> 을 집필하였다. 구운몽은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하며,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편,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고 국자의식(國字意識)을 강조하여 허균과 조선후기 실학파 문학을 잇는 역할을 하였다. 1692년 남해의 적소(謫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698년 그의 관직이 복구 되었고, 1706년에는 효행에 대해 정표(旌表)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대표작으로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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