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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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5년(세종17년) 서울에서 출생,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 동봉(東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천재의 자질을 타고나서 3세에 벌써 글자를 알아 시를 지었으며, 5세 때는 「중용」과 「대학」에 능했다 한다. 이 소문이 널리 나서 세종대왕은 승지를 시켜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보도록 한 다음 상을 내리고 &q

 김수영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해 활약한 해방 이후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이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영역에서 시의 현대성을 가장 적극적이고 날카롭게 탐구한 시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의 초기 시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난해한 성향을 띄었다. 그러나 4·19를 경험하면서 그의 시는 자유의 이념과

 선생은 1893년에 태어나서 1950년 6·25 동란 때 서울에서 납북당하여 정확한 사망연월을 알 수 없다. 납북당시의 나이가 58세이므로 살아 계신 다면 올해 108세에 해당한다. 선생은 동래(東萊) 정씨 명문가에서 태어나서 나이 18세(1910년) 되던 해에 나라가 망했다. 그 해 난곡 이건방 (李建芳)선생 문하에 들어가 한학 공

 김좌진 장군의 고향은 충남 홍성으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일을 해 이웃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불과 17세에 자기 집의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으며, 80칸이나 되는 자기 집을 학교 교사로 내어주고 자기는 초가집으로 나가 살기도 하였다. 현재 김좌진 장군의 집터는 홍성의 갈산(葛山)고등학교의 부지로 이용되고 있다. 김좌진 장군

 혜초(慧超 : 704∼787)는 통일신라의 고승, 밀교(密敎)를 연구하였고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이다. 혜초는 어렸을 때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719년(성덕왕 18년) 중국 광주(廣州)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서 밀교를 배웠다. 금강지는 남인도 출신으로 제자인 불공(不空)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와서 밀교의 초조(初

 이중섭(李仲燮 : 1916~1956)은 화가로, 창의적이며 민족적인 화풍의 유화와 은박지 그림을 주로 그린 인물이다.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부농인 아버지 이희주와 어머니 안악 이씨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된 해에 이중섭은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매우 부유했던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부족

 권율(權慄, 1537∼1599),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 이치대첩 등 수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육전의 명장, 도원수 권율 장군은 1537년 강화도 연동에서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의 아들로 태어났다. 158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사헌부 감찰, 낭관 등을 거쳐 1591년 의주목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맹사성(孟思誠:1360~1438), 조선 세종대의 향악의 권위자, 청백리로 이름 높은 명재상 맹사성 선생은 1360년(고려 공민왕 9년) 지금의 개성 근교 농촌에서 아버지 맹희도(孟希道)와 어머니 홍양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에서 10세 사이에 한산을 거쳐 지금의 아산시 배방면 중리(행단)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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