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1435년(세종17년) 서울에서 출생,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 동봉(東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천재의 자질을 타고나서 3세에 벌써 글자를 알아 시를 지었으며, 5세 때는 「중용」과 「대학」에 능했다 한다. 이 소문이 널리 나서 세종대왕은 승지를 시켜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보도록 한 다음 상을 내리고 &q
선생은 1893년에 태어나서 1950년 6·25 동란 때 서울에서 납북당하여 정확한 사망연월을 알 수 없다. 납북당시의 나이가 58세이므로 살아 계신 다면 올해 108세에 해당한다. 선생은 동래(東萊) 정씨 명문가에서 태어나서 나이 18세(1910년) 되던 해에 나라가 망했다. 그 해 난곡 이건방 (李建芳)선생 문하에 들어가 한학 공
김좌진 장군의 고향은 충남 홍성으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일을 해 이웃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불과 17세에 자기 집의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으며, 80칸이나 되는 자기 집을 학교 교사로 내어주고 자기는 초가집으로 나가 살기도 하였다. 현재 김좌진 장군의 집터는 홍성의 갈산(葛山)고등학교의 부지로 이용되고 있다. 김좌진 장군
권율(權慄, 1537∼1599),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 이치대첩 등 수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육전의 명장, 도원수 권율 장군은 1537년 강화도 연동에서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의 아들로 태어났다. 158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사헌부 감찰, 낭관 등을 거쳐 1591년 의주목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